나만의 수업을 하고 싶어
난 스무살부터 대학생활보다 사회생활을 먼저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도 아니고,
그저 이십춘기가 와서 대학에 가기 싫었던 건데
부모님께서는 이런 내 선택도 존중해주셨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충도 많았지만, 점점 사회생활 눈치 만렙이 되어 어딜 가도 예쁨 받는 막내 직원이 되었고,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인생 선배들은 나에게 '유치원 교사상', '유치원 교사의 스테레오 타입', '유치원 교사가 잘 어울린다', '워낙 다정하고 꼼꼼해서 잘할 것 같다', '내가 학부모라면 신뢰가 갈 것 같다'라는 말을 많이 해 주었다.
이후 나는 '나에게 유치원 교사가 정말 잘 맞는 건가?'라는 생각에 유아교육학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학교생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좋은 동기들을 만났고, 발달심리 분야가 나름 흥미로웠고, 과제가 많아 힘들었지만 모의수업을 할 때마다 크게 힘든 점은 느끼지 못했다.
눈물로 얼룩진 어린이집 보육실습을 겪고 방황했지만, 유치원 교생실습에서 정말 존경스러운 지도교사를 만나고, 유의미한 교생 기간을 보낸 덕분에
나는 졸업하자마자 사립유치원에 취업하게 되었다.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재단 소속의 사립유치원이었다.
사립유치원에 갓 입사한 초임교사의 나는 사회생활 경험이 많아 단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유치원 선배들에 비해 나약하고 여린 존재였다. 매일을 눈물을 흘리며 버텼고, 교사로서의 효능감도 바닥을 찍었고, 매일 세상이 무너져 버리기를 바랐고, 잠에 들며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몸 이곳저곳이 너무 아팠다.
토요 출근은 일상이고, 일요일엔 집에서 서류 작업을 해야 했을 정도인 사립유치원의 업무 강도는 신경이 예민하고, 대인관계에 굉장히 민감한 나에게는 몸이 못 버티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사립유치원에서 1년을 보내고 퇴사하게 되었다.
"전 유치원 교사를 할 그릇이 못 되는 것 같아요. 이 일은 다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대책 없이 일단 "살고 보자"는 생각에 한 퇴사였고, 퇴사 이후 밀린 잠을 보충하는 데에만 이주일을 투자했다.
그리고는 씻은 듯이 몸이 나았다
난소에 생기고는 점점 커지고 있어 지켜보고 있던 혹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한 달을 놀고 쉬기만 하다가 고민이 생겼다.
나는 유치원 교사가 안 맞는 걸까?
아니면
이 유치원이랑 안 맞았던 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다른 유치원에 근무해보는 수밖에,
하지만 이미 한번 데어본 사립유치원에 취업한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사립유치원 교사 생활을 하며 만족한 순간이 언제였던가.
내가 하고 싶어서 몰래 준비한 수업에 아이들이 재밌게 참여해 주었을 때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기술, 의사소통 기술을 연습시키고 점점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았을 때
그렇다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아픈 것도 교사 탓이 된다는 점,
아픈데 병원에 가거나 약 챙겨 먹을 시간도 없어 토요일까지 기다려야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점
내 교육관대로 교육할 수 없다는 점,
내 신념에는 이 교육방식이 맞지 않는데 유치원의 교육방식과 맞추어야 한다는 점
교사 개인의 자율성이 없다는 점.
그저 유치원의 부속품으로서 일해야 한다는 점.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을 충족시키려면
'공립유치원'외에는
답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게 나는 겁도 없이 유아 임용판에 뛰어들었다.
그저 아플 때 병원 가고, 내 신념대로 자유롭게 교육하고 싶어서....!
많이들 선호하는 안정적인 교육공무원이라는 위치, 정년 보장 따위는 애초에 전혀 관심 없었다.
그저 내 수업을 하고 싶었을 뿐.
평소에 '적당히' 하지 못하는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해 감사하게도 짧은 수험생활에 높은 등수로 합격하여
공립 단설유치원에 발령받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절망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