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바로 실신

by 해봄

나는 지난 2학기에 학부모에게 심각한 교권침해를 당하고, 관리자에게 사후조치도 제대로 받지 못해

결국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다.


마음의 병이 무서운 이유는,

의사에게도 타인에게도 심지어 자신에게도 그 아픔의 상태와 크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몸이 심각하게 약해지고 아프다는 것.


이 몸과 마음 상태로 나는 아이들 졸업까지 근무를 강행했다. 100퍼센트 나의 의지로,

이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 다 주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날은 원장실에서 회의 중이었다.

좁디좁은 원장실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작은 창문에 의지해 두 시간째 회의 중이었다.


회의 안건은 바로

전 학교급중 유치원에서만 존재하는 업무인 '유아모집'

유아모집은 자칫 조그마한 실수라도 했다간 민원 발생을 피할 수 없고, 심한 경우에는 입학비리가

될 수도 있는 아주 무거운 업무이다.

그러한 무거운 업무를 추진하는 회의에 모든 교사가 소집된 것이다.


유아교육법에 따르면,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유치원 유아를 '교육'하는 역할을 한다.

원장은 이 외에도 업무 총괄, 소속 교직원 관리

원감은 업무관리, 원장 부재 시 역할대행

등의 역할을 함을 법령에서 명시하고 있다.


과연 유아모집 업무,

심지어 규정이 정해진 상태에서 실질적 유아모집 업무 추진에 대한 회의가 아닌

유아모집 관련 '방과 후 대기자 관리 규정'을 정하는 회의에 교사가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유아모집은 교사 본연의 업무가 아니어도 너무 아니다.

물론 유치원 교사들이 하는 대부분의 업무는 교사 본연의 업무와는 거리가 있지만,


유아모집 관련 규정을 원장 원감이 다 있는 단설유치원에서 모든 교사를 소집한 회의에서 결정하고, 그 회의에 앉아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유아모집 관련 규정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부여한다는 건,

엄연한 갑질 행위이다.

같이 회의해서 규정을 정하자고 해놓고 추후 문제가 생기면 공식적으로 교사들도 함께 책임을 지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하기에,


심지어 이 안건으로 세 번째 회의 소집이었다...

회의에 집중을 못한지는 오래되었고.

우리는 이 자리에 왜 앉아있는가?

이런 건 원장 원감이 관리자 고유의 권한을 사용하여 정하는 게 맞지 않나?

우리는 평교사인데 왜 유치원 운영 및 관리에 대한 사안을, 회의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소재를 떠안아야 할까?

그럼에도 우리는 왜 여기 앉아있고,
왜 아무도 이게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일까,

안 되겠다. 못 참겠다. 내가 얘기해야지!
어...................

갑자기 원장실의 하얀 천장이 노랗게 보였다

원감님의 얼굴이 여러 개로 겹쳐 보였다

숨이 막혔다

유치원에선 항상 숨이 막히지만 이건 달랐다

누가 목을 조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공황 발작이었다.


예의고 뭐고

죽어도 회의실에서 죽는 건 너무 최악이니까.

문을 열고 뛰쳐나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주저앉은 채로 왼쪽으로 쓰러졌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곧바로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보라색 고양이 인형 위에 쓰러져있었다.

고맙다 인형아, 네가 날 살렸다.

인형이 아니었다면 왼쪽 어깨가 박살 났을게 틀림없었다.


나는 팔다리를 가누지 못해

대학원에 가야 해서 정시 퇴근해야 하는 선생님들의 부축을 받아 근처 교실 휴식공간으로 질질 끌려 이동했고, 선생님들의 보살핌에 금세 팔다리를 가눌 수 있게 되었다.


시계를 보니 퇴근 시간이었다.

무려 실신한 나를 돌보아준 건 몇 명의 선생님들 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원장실에선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치가 떨렸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비참했다.

나는 이 유치원에서 교사이기 이전에 일단 사람이 아니구나.


그대로 짐을 싸 지문을 찍고 퇴근해버렸다.


관리자들이 내 실신 상황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 여부는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아니다. 알고 싶지 않다. 알게 되는 게 두렵다.


그래서 영원히 묻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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