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애도 없으시잖아요

수없이 들어도 힘 빠지는 그 말

by 해봄

젊은 유치원 교사들이 수없이 많이 듣는 그 말,

선생님은 애도 없으시잖아요
아이도 안 키워보셨는데 어떻게 알아요?


이런 말을 들으면 힘이 쭉 빠진다.

이미 소진되어 한계에 다다른 의욕마저 사라진다.



내가 다섯 살 담임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 학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받기 전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애석하게도 그 예감은 적중했다.


학부모님의 질문은 "우리 아이가 교실에서 특정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 않는지?"였다.

당연히 아니라고 답변드렸다.

당시 유아모집이 미달되어 우리 반은 채 10명이 되지 않는 적은 인원수여서 한눈에 관찰 가능했는데 그런 정황은 전혀 관찰되지 않았고,

그 어린이는 절대 조용히 괴롭힘 당할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학부모님께서

"하.. 그러세요? 하긴 선생님은 애도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아이들 상황을 일일이 아시겠어요...."


전문성을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던 나는 단호하게

"어머님, 제가 다섯 살 자녀는 없지만, 수십 명의 다섯 살을 교육시키고 성장시켜왔습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단호하게 받아치고 나서야 우리는 다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우리 반 아이 두 명이 외부 놀이터에서 다른 반 어린이들과 어울려 놀았는데

어머님이 보시기에는 우리 반 친구 한 명이 본인의 자녀를 유독 놀이에 못 끼게 하려는 분위기를 느끼셨다고 한다.


자녀가 괴롭힘 당하는 것 같다는 마음이 얼마나 쓰라렸을지 내가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 굉장히 속상하고 고민한 후에 담임에게 연락하셨을게 틀림없으니,


일단 유치원 밖에서 일어난 사건은 교사가 직접 목격한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 자체는 해결해드리기 어려운 부분이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최대한 자녀 양육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해드리고 싶었기에, 전화를 끊지 않고 상담을 이어나갔다


학부모님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상담이었지만, 대화는 점점 교사의 사회적 기술 관련 아이의 발달 수준과 지도방향 vs 학부모님의 방어적인 태도로 흘러나갔다.


나는 5세 아이들의 우정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친구'의 개념까지는 아직은 다다르지 않는다. 교사가 관찰한 우리 반 아이들의 사회적 인식 발달 상태는 아직 타인보다 자신에 대한 인식이 압도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이고,

특정 친구와 시공간을 넘어선 신뢰 로운 관계의 우정보다는, 지금-여기-이 순간에 나와 함께 노는 친구라는 정도의 우정 개념을 인식하는 수준이다.

혹시 놀이터에서 함께 놀고 싶지 않았고 아이들 간의 갈등이 있었을지는 저도 모르지만,

유치원에서 **이만 괴롭힌다거나, 놀이에서 배제하는 모습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드렸지만...!


어머님께서는 냉정하게도

"지금 우리 애가 친구에 대한 개념이 그 정도밖에 안된다는 건가요? 우리 애는 일반적인 다섯 살과는 달라요! 선생님 되게 똑똑한 척 아는 척하시는데, 우리 애는 달라요. 그 정도 수준은 아니라고요.

어쨌든 이번 일 해결 못해주시면, 유치원 옮길게요"

라고 하셨다


황당했다.

교사로서 외부 사건은 개입 불가능함을 알렸고,

우리 반에서 관찰된 발달 수준을 일반적인 5세 수준과 덧붙여 알려드리며 '걱정하실 정도의 상황은 유치원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똑똑한 척한다느니

우리 애는 다르다느니

해결해주지 않으면 유치원을 옮긴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시다니


나는 더 이상 이 학부모님께 선의를 베풀 수 없었다.


단호한 태도로,

"저의 교육이나 저희 원의 운영방침이 어머님의 생각과 맞지 않다고 느끼셔서 퇴원 요청을 하신다면 어머님의 의견을 존중하겠다."


"다만, 유치원은 또래와 갈등을 겪으며 사회에서의 갈등을 경험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는 곳이라고, 앞으로 6,7세가 되면 이런 일은 아무 일도 아닐 정도로 많은 갈등이 발생할거고, 다른 유치원에 가신다 해도 이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퇴원 원하시면 고민 충분히 해보시고 연락 주세요"

하고는 전화상담을 마무리했다.

무려 한 시간 하고도 십 분이 지나있었다.


보통 유아교육 관련 일을 하는 사립유치원 교사나,

유치원 정교사 자격을 소지한 보육교사들은

'유치원 임용에 합격해서 공립유치원에 발령받으면 초중고 선생님과 법적으로 같은 대우를 받으니 학부모들도 전문성을 존중해 주시겠거니'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도 이러한지에 대한 질문을 개인적으로 많이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똑똑한 척한다", "아이가 없는데 뭘 알겠냐"

달라진 게 없었다.


언제쯤 유치원은 돌봄이 아닌, 서비스가 아닌, 단순 프로그램 체험기관이 아닌,

'학교'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유치원 교사가 아이들이랑 놀아주거나, 돌봐주는 사람이 아닌 개별 유아를 관찰하고 유아마다 성장이 필요한 내용을 파악하여 일상 속에서 매 순간 교육하는 '교육 전문가'로서의 '교사'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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