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교사의 화 털어내기 대작전
유치원 교사를 시작하고 나서
내 인성의 밑바닥을 확인했다고 확신할 수 있다.
5-7세 순수한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다 보면
교사도 사람인지라
소중한 내 제자, 우리 아이들이지만 화가 날 때가, 아니 치솟을 때가 아주 많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존경스럽다.
이런 폭풍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부모가 된 그 시점부터, 매 순간 겪으며 자녀를 키워오셨을 테니.
5세 반 아이들을 담임할 시절의 이야기다.
좀 더 높은 연령의, 교사와 대화가 통하는 아이들은 솔직하게 선생님도 화가 났다는 점을 말하고, 아이들과 교사의 감정 갈등을 말로 해결할 수 있다.
하 지 만
유치원의 최고 귀염둥이들, 존재만으로도 깜찍한 5세들은 아직 발달 특성상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고, 자신의 감정을 인식한다 해도 사회에서 수용되는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수없이 연습해야 한다.
언어발달에 있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는 5세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다섯 살 어린이들 간의 갈등이 발생하면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아직 아이들이 자기중심적이고, 친구의 입장까지 고려하기엔 어리기 때문에 대화로는 쉽사리 중재가 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교사는 짧고 굵게
"이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야"라고 지도하게 된다.
특히 나는
'남의 몸에 허락 없이 손을 대는 것'은 안된다는 점을 아이들이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단호하게 지도하곤 했다.
물론 교사도 흐린 눈, 못 본 척하면 마음 편하다.
적당히 갈등 상황이 발생한 아이들을 분리만 시켜 놓아도 일단 할 수 있는 조치는 한 거다.
하지만 매사 '적당히 대충'하지 못하고
유치원에서의 교육은 인성교육이 기반이라는 생각이 강한 교사인 나는,
아이들 앞에서 단호하면서도 짧고 굵게
'하면 안 되는 행동이야'를 계속해서 지도했다.
하지만 이렇게 단호하게 지도를 해야 하는 상황은
과장 보태지 않고 3분에 한번 꼴로 일어났다.
때리고, 울고, 망가뜨리고, 던지고, 밀어버리는 상황들은 내 눈앞에 불꽃놀이처럼 펼쳐졌다.
'5세 발달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교사다. 바른 행동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아이가 행동 하나를 배워서 습득하기까지는 수백 번을 반복하고 또 해보아야 한다'
'아이들도 친구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아직 충동조절이 어려운 연령이다'
이 모든 것을 다 생각하고 되뇌고 알면서도
교사도 사람인지라,
나도 매일 수백 번 반복되는 같은 말에 지치는지라,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교무실에서의 관계와 관리자의 억압과 버거운 업무에 이미 소진된지라,
화가 나고, 또 화가 나고, 그래도 또 화가 났다.
나도 어디 가서 소리 한번 질러야 이 마음속의 불이 사그라들 것 같았다.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았던 어느 날,
화라는 불이 마음을 태우고 목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 잠깐 복도에 좀 다녀올게
하고는, 혹시 그 사이 무슨 일 생길까 불안한 마음에
차마 진짜로 나가지는 못하고
발은 교실에, 몸은 복도 방향으로 향해 두고
노래를 불렀다. 바로 겨울왕국 2의 show yourself.
그중에서도 클라이맥스 부분.
올라가지 않는 음역대이니 사실상 소리 지른 거다.
그저 멜로디를 붙인 소리 지름.
Ah ah ah ah
Ah ah ah ah ah
엘사님께서 마음속의 불을 잠시 얼려주신 기분.
뒤를 돌아 교실 안을 돌아보니
아이들이 멈춰서 나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엘사....! 엘사다!!!!!!!
선생님 그거 엘사 노래 맞죠????
그렇게 나는 엘사 선생님이 되었고,
화를 참을 수 없을 때에는 노래를 불렀다.
사실 매일 화가 나는 순간들이 있었기에,
매일 한번 이상은 꼭 부르게 되고
점점 음역대가 높아져서 진짜 노래가 되었다ㅎㅎㅎ
그때 그 다섯 살 아이들은
선생님이 화나서 그런 건 줄도 모르고
해맑게 '렛 잇고'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난 집에서 그걸 또 연습해갔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나는 화가 날 때마다 엘사로 변했고,
덕분에 나날이 고음 실력이 늘었다.
아이들은 내가 엘사님의 엄청난 팬인 줄 알지만
나는 사실 안나 님을 훨씬 좋아한다
(죄송해요 엘사님)
7살 친구가 만들어 선물해줬던 엘사 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