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할 권리를 빼앗기고 공식적으로 혼나는 시간
나는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한 대부분의 교사들이 그러하듯,
사립유치원에 취업하여 초임교사 시절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정말 많이 배워서 지금 이렇게 강해 진건가? 싶은 점도 많고,
절대 잊지 못하는 아픈 기억도 있다.
난 동료장학의 진짜 개념을 초임 시절이 이미 한참 지나버린 후 임용고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장학 대상 교사의 교육활동을 보고 수정•보완할 점을 동료의 관점에서 조언해 주어 장학 대상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
하지만 내가 사립유치원에서 받았던 동료장학은 절대 그런 개념이 아니었다.
'초임 교사를 도와주겠다'는 감사한 명목 하에 진행되었지만 매일 공식적으로 혼나는 비난의 시간.
(듣는 사람이 납득하기 어렵고 상처를 받았다면 그건 분명 비판이 아닌 비난이다)
동료장학을 실시하게 된 계기는 우리 반 아이들을 내가 잡지 못해(?)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들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분이 보시기에는 나는 교사의 권위가 없고, 엉망진창인 우리 반의 모습이 모두 초임교사인 내 역량 부족인 탓이었고, 직접 개입을 통한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신 것 같다.
유치원 교사 생활에 갓 4개월쯤 접어든 시점이었다.
초임인 데다 나이도 어린 막내 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일단 유치원 교무실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쏟아지는 잡무들과 앉을 시간조차 없는 유치원 교사의 현실, 그리고 선배교사들이 나에게 원하는 (정확히 말해주지는 않는) 행동을 그때그때 눈치 보며 해내느라 바빠 솔직히 아이들 수업에 신경을 많이 못 쓴 것도 사실이다.
그건 분명 내 부족함이라고 인정한다.
우리 반에 동료장학이라는 명목 하에 오신 그분은 매일 나의 일일 교육계획안(심지어 세안이었다. 발문까지 적어야 하는)을 들고 나의 하루 일과를 무려 '교실 안에서' 계획안과 비교해보고 오직 '부족한 점'만을 빼곡히 적어 일과가 끝난 후에 날 불러 말씀해주셨다.
도서실 뒤편 테이블로 오라는 말씀이 전달되면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다가올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티슈를 잔뜩 챙긴 후에 그 장소로 갔다.
역시나 매일 비슷한 피드백이었다.
"이야기 나누기를 20분으로 계획했는데 왜 10분 남짓밖에 끌고 가지 못한 거죠?"
"이렇게 발문 했는데 맞다고 생각하나요?"
"계획안에 적어 둔 발문과 다른데 왜 그런 건가요?"
"잘 모르겠으면 지도서를 좀 보세요. 진짜 못하겠으면 지도서 그대로 하던가"
"오늘 수업은 뭐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너무 못 잡아요."
결론은 항상 왜 일일 교육안대로 하루 일과가 진행되지 않은 건지, 수업을 왜 못하는지, 왜 아이들을 못 잡는 건지
오직 그 내용뿐이었다.
매일 활동이 다르니 표현이 달랐을 뿐, 무려 나는 그분이 혼내시는(?) 멘트를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 건 없었다. 그나마 조언해 주신건 칭찬스티커나 젤리 주기 같은 행동주의 기법뿐,
하지만 나는 동물도 아닌 6살 어린이들을 그런 방법으로 길들이고 싶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한다.
장학의 탈을 쓴 혼남이 한 달 이상 이어지고, 난 그분의 얼굴만 보아도 "난 부족한 교사야. 자질이 없어. 발전이 없는 교사야"라고 근거 없이 스스로 자존감을 깎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혼나던(?) 중에 그분은 왜 이렇게밖에 발문을 못한 건지 물으셨고, 나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그 이상으로는 생각을 못했어요"라고 대답했다.
나름 용기 낸 것이었다. 나는 초임이라 경력교사만큼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메시지를 돌려 표현한 거다.
돌아온 답은
"그러니까 생각을 하고 수업을 해야지. 선생님 교사 아니야? 발문을 할 때는 생각을 똑바로 해야지"였다.
그 순간의 어조와 분위기까지 난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이어서 "선생님 지금 내가 시간 내서 도와주는 건데 듣기 싫어? 태도가 그게 뭐야? 초임이면서 배울 생각은 안 해? 교무실에서만 잘하면 다야?" 비난 폭격이 이어졌다.
난 얼마 남지 않은 용기를 끌어 모아 개미 같은 목소리로 "저 많이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도와준다고 기껏 시간 냈더니 나쁜 사람 만든다"는 그분의 말과 함께 장학(비난)의 시간은 종료되었다.
정말 죽는 게 낫겠다 싶은 한 달이었다.
그리고 바로 교실로 돌아가 청소를 시작하는데, 교실을 함께 청소하는 선배 선생님께서는 무슨 상황인지 다 알면서도 항상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그저 우리 둘은 묵묵히 청소만 했다.
그래서 난 그 선배 선생님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분명 아는 척 말을 걸거나 조언을 해 주셨다면 바로 무너졌을 것이 틀림없었다. 조언도 들을 여유가 있을 때 해 주어야 빛을 발하는 것이니까.
한 달여간의 동료장학 시간은 나도 모르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교육경력이 쌓이고, 심지어 임용고시를 당당히 합격하고 공립유치원 교사가 되어서도 나는 학부모 상담보다도, 행사보다도, 참여수업보다도 동료장학하는 날이 제일 두려웠다.
이게 모든 교사의 생각은 아닐 수 있겠지만,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도전의 기회를 주고, 실패할 때마다 격려와 간접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따뜻하게 기다려주는 교사의 정서적 지원 끝에 아이는 해내게 되고, 교사 역시 기뻐하며 노력한 과정과 결과를 가치 있게 여겨 준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주도성과 성취감을 동시에 배울 뿐만 아니라, 점차 두려움 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가정의 울타리를 나와 많은 것들이 처음인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묵묵히 지원해주는 것처럼,
유치원 교사가 처음인 초임 교사에게도 성장할 시간을 조금이나마 주고, 비난보다는 초임교사가 겪는 구체적인 어려움에 대해 공감 섞인 조언을 해주면 좋을 텐데,
물론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하나씩 채워나갈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조금씩 부드럽게 알려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화기애애할 듯한 분위기의 유아교육계는 모든 학교급을 통틀어 가장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자랑한다.
유아를 대상으로 교육한다고 해서 교사들의 전문성도 유아 수준인 것처럼 여기는 듯하다.
오늘도 눈물로 하루를 보내며 월요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할, 심지어 이 날 좋은 일요일에 이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초임교사들에게 잘하고 있다고, 처음인데 서툰 건 당연한 거라고, 교사도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거라고,
그리고 그게 누구이던 내 교육활동에 비난을 하는 것은 조언도, 도움도 아닌 명백한 교권침해라는 사실을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결론은 수많은 유치원의 초임교사 여러분, 그대들은 아무 잘못 없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