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 초등 취학은 학제 개편이 아닌 '개판'

공립유치원 교사가 바라본 만 5세 취학의 근본적 문제

by 해봄

오늘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고 유아교육계는 말 그대로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바로 만 5세 초등 취학, 이른바 K-학제개편이다.


이 정책의 취지 중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질 높은' 교육을 '적기'에 '동등'하게 국가에서 제공하겠다는 것인데,


이제 고작 만 5세, 즉 7살 아이들에게

질 높은 '학습'을 '조기'에 '동등'하게 국가에서 의무교육으로 제공하겠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의 유아교육은 '질 높은'교육이 아닌가?

말 한마디로 유아교육의 가치와,

유치원 교사들의 전문성과,

유치원의 교육과정인 2019 개정 누리과정이,

유치원 교사들이 개별 아이들의 흥미와 발달 수준을 파악하고 세심하게 놀이를 지원해왔던 시간이,

이제까지 만 5세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경험하고 배우고 느끼고 연습한 것들이,

하루아침에 '질 낮은' 교육이 되어버렸다.



교실 책상에 앉아 40분간 앉아서 집중해 수업에 참여하는 초등교육이 만 5세 아이들에게 '적기' 인가?

이걸 적기교육이라고 발표한다면

당연히 유아교육 전공자들은

'유아 발달을 하나도 모르는구나' 할 수밖에 없다.


만 5세 아이들은 절대 앉아서 40분간 집중하며 수업에 참여할 수 없다. 설령 그게 가능한 아이가 있다고 해도 그건 아이가 본능을 참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하는 힘이 잔뜩 들어간 행동이다.

아이들의 발달 수준에 맞지 않고,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과연 적기교육인가?


이건 명백한 '조기'교육이다.

만 5세 아이들에게 초등학교의 수업방식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생각해보면 이제 겨우 세상을 6년가량 살아본 아이들일 뿐인데,


'동등'하게 국가에서 만 5세 아이들에게 의무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꼭 학제 개편을 해서 해야 하는 걸까?




이 갑작스러운 발표에서 내가 가장 못마땅한 것은

아이들의 교육은 아이들의 삶 그 자체와 연관된 정책인데 눈 씻고 찾아보아도,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커녕,
아이들을 학습 지옥에 1년 더
일찍 보내겠다는 의도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만 5세 담임교사였던 사람으로서 꼭 이야기하고 싶다.

만 5세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만 5세 아이들은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익혀야 한다'
만 5세 아이들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만 5세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이하며 '주도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고, 그 과정에서 오는 기쁨과 몰입, 그리고 성취 과정'을 느껴야 한다.
만 5세 아이들은 이 외에도 유치원에서 매 순간 경험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만 5세 아이들에게 적기교육이란
유치원에서 삶의 기초를 경험하는 것이다.
절대 교과서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만 5세 아이들은 일단 유치원에서 배운 대한민국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역량을 가지고,

제멋대로인 아기가 아니라 학교라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추어진 어엿한 어린이가 되어 초등학교에 진학해야 한다.

그제야 초등교육이 적기교육이 되어 빛을 발할 수 있다.



어른들이 제시하는 정책이 아이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이번엔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이 정책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책이다.
그것도 무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놀 권리'를 무려 1년이나 앗아간다.

국가의 교육정책이 아이들의 권리를 침해하다니,

이건 받아들일 수 없다.



부디 아이들의 놀 권리를 송두리째 앗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에 대한 정책을 어른의 논리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한 국가의 정책을 만드는 대단한 사람들이, 적어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길 바란다.


적어도 어른이라면,
아이들의 기본적인 인권은 지켜주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하더라도
아이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감출 수도, 용인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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