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퍼진 코로나 집단감염

보건교사 김해봄의 위기

by 해봄

때는 오미크론이 등장하기 이전,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전국을 휩쓸 때,

아직 방역당국의 조치와 보건소의 관리가 철저한 시절이었다.


보건교사 김해봄은 겨울방학을 앞두고

'아 제발 일주일만 무사히 지나가자'라고 빌었다.

그런 와중에 불안함에 주변 유치원의 코로나 발생 시 대응 사례를 물어보고 머릿속에 매일 복기해본 후 잠들었다.


겨울방학이 며칠 남지 않았던 그날,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여느 아침처럼 아이들과 근황 이야기를 나누며 소소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교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해봄 선생님, 코로나 확진자 발생해서.... 바다반에 인력 보내드릴 테니 교무실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올게 오고야 말았다.


그렇게 나는 자세한 상황도 모른 채 아이들에게

"원감 선생님이 찾으셔서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 안전하게 놀이하고 있어."라고 말한 후 교무실로 갔다.


이게 겨울 방학 전 나와 바다반의 마지막 인사였다.

나는 그날 다시 교실로 돌아올 수 없었다.



교무실에 내려와 보니

확진자가 2명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심지어 그 2명은 동선이 전혀 겹치지 않았다.

2개의 감염 발원지가 생긴 것이다.


원감님 얼굴에는 당황한 티가 역력했고,

원장님은 평소처럼 원장실에서 나오시지 않았다.

그 안에서 이 상황에 대한 고민을 하시는 듯했다.


다들 처음 겪는 일이고,

엄연히 생각해보면 남(김해봄)의 업무인 데다가, 매뉴얼이 수시로 개정되어왔기 때문에,

대응 매뉴얼 숙지가 전. 혀. 되어있지 않았다.

"일단 보고부터 해야죠? 어디에 보고해야 하죠?"

원감님은 역시 프로 공무원답게 보고할 생각부터 하셨다.


"원감님 보고는 담당자인 제가 드려야 합니다. 일단 아이들 등원 막고, 이미 등원한 아이들 빨리 귀가조치 부탁드려요"를 랩처럼 빠르게 뱉어내고는,


자리에 앉아 그동안 머리로만 시뮬레이션해왔던 업무를 시작했다.

교육지원청에 유선 보고를 하고, 서면 보고를 했다.

보건소 담당자의 번호를 알게 되어 개인 전화로 수시로 통화를 하며 대응을 진행해나갔다.


유치원 아이들은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시는 경우가 많아 즉시 귀가가 어려운 아이들이 꽤 많았고, 다른 반 선생님들이 이 아이들을 1대 1로 돌봐주셨다.


확진자 발생 알리미가 발송되고, 전화가 미친 듯이 오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나 외에는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결국 전화를 다른 사람이 대신 받아 주어도 나를 거쳐야 했다.

더 정신이 없고, 답변 실수가 생길까 염려스러워

교무실에 김해봄과 교육실무사 외에는 전화받기 금지를 붙여놓고, 오롯이 우리 둘이서만 모든 민원을 받아내었다.


감사하게 교육실무사님은 내가 민원을 받고 답변을 하면 그 내용을 빠짐없이 적어 바로 숙지해주셨고, 평범한 민원에는 문제없이 대응해주셨다.


이 민원전화 폭탄인 와중에 역학조사 자료를 보내드려야 했다.

이전에 전체 교직원 및 원아 명단과 그 외 수많은 정보를 담은 역학조사 자료를 미리 야근하며 만들어 두었는데,

보건소에서는 확진자 동선에 따라 추려서 발송해달라고 하셨다.

발원지가 두 곳이니 두 가지 버전으로 나누어 편집하는데, 그 와중에 전화가 계속 와 도저히 업무 진행이 되지 않았다.


미친 듯이 민원전화를 응대하던 중... 3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나는 이제 또 보고부터... 3번 확진자 버전으로 다시 해야 한다.....


이 와중에 민원전화를 거시는 학부모님들은 처음 겪는 기관 내 코로나 감염이다 보니 다소 예민한 상태셨다. 계속 확진자가 어느 반의 누구인지,

그 아이의 동선은 왜 알려주지 않냐며 화를 내셨고, 담당자 나오라며 큰 소리를 치셨다!

지금까지 담당자와 통화하셨음을 알리고 나서야 민망해하시곤 했다.

(그 당시에는 확진자 개인정보 공개는 금지였고, 작고 이동이 많은 유치원 건물 특성상 동선은 모두 겹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같은 분이 계속 전화를 걸어 답변을 동일하게 하는지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고,

격리 대상자 어린이의 가족들은 출근을 못하는데 생계는 어떻게 책임질 거냐며 화를 내셨다.

어떤 어머님은 자기 아들이 3대 독자인데 코로나 걸리면 자기는 시어머님께 끝이라며 신세한탄을 하시기도 했고....

정말 온갖 민원을 다 받아냈고,

덕분에 구석 구석 매뉴얼을 외워,

걸어 다니는 코로나 방역대책 매뉴얼이 되었다.


순식간에 시간은 오후가 되어갔고,

이제 교직원 귀가 및 검사일정을 짜서 나눠드렸다.

선생님들은 귀가하며 나에게 아주 미안해하셨고,

의리로 함께 남겠다는 선생님도 계셨다.

피곤했던 나는 "제발 한 명이라도 가주세요. 가서 코 찔러 주시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라고 말하고는

다시 역학조사 작업을 하러 자리에 앉아야 했다.


하필 확진자 3명이 주요 활동 장소와 동선이 달라 세 가지 버전을 발송하고, 보건소에서도 세 가지를 모두 이해하느라 애쓰셨고, 보건소 담당자와 하도 통화를 많이 해서 전화 친구가 된 느낌이었다.


모든 아이들을 집에 보내고, 자료 발송과 보건소 인터뷰를 마친 뒤 실무사님과 pcr검사를 받기 위해 터덜터덜 귀가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숨 가쁘게 바쁘고, 욕도 먹고, 물 한잔 할 틈도 없었는데, 우리 반 아이들 배웅도 못 해줬는데,

굉장히 알차게 하루를 보낸 느낌,

유치원 교사로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는데, 그래도 이건 정신없지만 진행이 되니 평소 느껴지지 않던 성취감이 느껴졌다.


이건 분명 내가 날 스스로 인정하는 느낌

'누가 뭐래도 넌 오늘 최선을 다했고, 최고였다'

피곤한 몸으로 침대에 뻗어 잠이 들었다.

내일 5.6.... 확진자가 더 나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그날 이후로 확진자는 계속 나왔고,

사실 이미 우울증신체화로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보건교사 김해봄은 남은 힘을 모두 짜내어 방학하고 난 이후까지 역학조사에 출석하며 이 코로나 집단감염 사태를 모두 마무리지었다.


칭찬에 후한 행정실장님은 혼자 이렇게까지 해낸 게 자랑스럽다며 동네방네 소문을 내시겠다고 했다.

난 그저 내 담당 업무를 한 것일 뿐인데도,


공기관에 업무 차 연락을 드리면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은 "제 담당이 아니어서~" 일 것이다.

그런 대답을 들을 땐 기분이 좋진 않겠지만 저 말은 높은 확률로 사실이니 믿어도 된다.

말단 공무원들은 사실 자기 업무 숙지도 어려울 만큼 바빠 다른 공무원의 담당까지 알 여유는 없다.


나도 남의 업무 모르지만,

내 담당인 코로나(aka. 보건교사) 업무에만은 부족하고 전문성도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

당장, 그리고 먼 훗날에 내가 무엇이 될지는 나도 모르지만 분명 큰 도움이 될 경험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만 5세가 느끼는 '초등학교'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