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폭발적 관심
2021년 유치원에서 내 담당 행정업무는 보건교사, 영양교사, 시설 주무관의 역할이었다.
뉴스에서만 나오던 백신 접종이 우선접종대상군의 순위에 따라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유치원 교사는 꽤 우선순위가 높은 직군이었고,
백신에 대한 두려움이 크던 상태에서
화이자 백신의 접종 후기라고는
온라인으로 접하는 최우선 접종대상 직군인, 의료인들의 후기뿐이던 시절이었다.
주변에 백신을 맞은 사람이 흔하지 않던 정도랄까,
드디어 30대 이하의 유치원 교사 및 교직원을 대상으로 접종 여부와 개인정보를 수합해서 자료 집계 시스템에 올리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담당자는 역시 담임교사 겸 보건교사였던 나^^
전 교직원에게 공지를 하며,
개인의 몸에 약물이 들어가는 일이니,
접종을 강요하는 분위기 형성은 지양하고,
각자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자율적으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문구를 강조했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이 문구를 강조한 이유는 내 백신 공포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난 사실 맞기 싫었다.
주변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부장님 표현에 따르면 '유리 몸'이었던 병약한 내 건강상태 때문이었다.
그땐 우울증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기 전이었지만, 워낙에 면역력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몸이라 매일 어딘가는 아파 약을 먹고 있었다.
제출 기한까지 수없이 고민을 했다.
큰맘 먹고 맞자니 이 유리 몸의 부작용이 걱정이고,
그렇다고 안 맞자니 만약에 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경우, 백신을 안 맞은 게 학부모님께 알려진다면?? 우리 유치원 관리자들의 반응은??
코로나 확진자를 바이러스 취급하던 시절이라 감염되었을 때의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접종하기로 했고, 역시 같은 생각을 한 모든 대상자가 접종하기를 선택했다.
드디어 접종 예약하는 날...!
12시에 맞추어 접속했지만 서버가 터져버렸고....
유리 몸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겨우 30분도 기다리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서버는 새벽 3-4경 복구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출근길에 접종 예약 시스템에 부랴부랴 접속하니
이미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은 예약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목요일 오후를 예약했고
목요일에 수업 끝나고 조퇴를 한 뒤, 접종을 하게 되었다.
막상 접종일이 다가오니 부작용 때문에 금요일에 출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몰려왔다.
공문 상에서는 접종 후 부작용이 있을 시 병가를 사용하도록 권장되어 내려왔지만....
우리 유치원에서 평일 병가란 입원 아닌 이상
역사상 없던,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없을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담당자로서!
공문에 명시되어 있는 병가를, 그것도 내 개인 병가를 차감해서 사용하는 건데, 병가 사용을 허가해주시길 주장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더 솔직히는 내가 금요일 병가를 쓰고 싶었다.
원장 원감님과 협상 시간을 가졌다
나: 기접 종자들의 후기에 따르면 사람마다 부작용의 정도가 천차만별이라는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평일 병가 사용이 가능한지 문의드립니다.
장감: (당연하다는 눈빛) 1차 부작용은 팔 근육통 정도라던데, 근육통 때문에 수업을 못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입원할 정도면 모를까,
우리 원에는 팔 좀 아프다고 수업 안 하실 선생님은 안 계신데 시간강사를 구해야 하나요?
나: 공문에도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고, 교사 개인의 병가를 차감해서 사용하는 건데도 허가 불가능한 근거가 있나요?
장감: 선생님, 선생님이 안 오면 바다반 애들은 어떡해요? 낯선 강사한테 맡기겠다고요?
그래.... 오늘도 예상한 가스라이팅과 함께 똑같은 이야기가 여러 번 오갔고, 나는 지쳤다.
"그러면 아파서 출근 못 하는 교사가 있는 경우, 원감님께서 보결해주시는 걸로 알겠습니다."라고
발칙함을 뽐낸 뒤 원장실을 나왔다.
선생님들은 움직이지 못하는 팔로 출근을 했고,
거의 마지막이었던 내 접종일이 찾아왔다.
접종 이후, 저녁 즈음부터 뻐근하게 팔이
아파오더니 눈에 띄게 붓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옷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플 정도로,
새벽에 팔을 올라타 어깨까지 아프고, 온몸에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 정도의 근육 경련이 있어 잠에서 깨고 말았다.
오늘 출근 못 하겠다고 병가 상신하겠다고 연락할지 말지 수백 번을 고민하다. '다른 선생님들도 다 출근했는데... 그리고 입원할 정도는 아니니까....'
하며 출근을 했다.
교실에 들어와 '내 컨디션이 영 아니니 수업 욕심을 자제하자'라고 합리화를 하고 하루를 시작해다.
첫 번째로 등원한 사랑둥이 친구가 평소처럼 인사와 함께 달려와 와락 안겼다.
작고 가벼운 아이와 부딪힌 건데도, 너무 아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너무 놀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선생님이 어제 코로나 주사를 맞아서 오늘 팔이 너무 아파. 미리 알려줬어야 하는데 깜빡했구나. 많이 놀랐지? 너 때문에 아픈 거 아니니까 걱정 마렴."
하며 놀란 사랑둥이를 진정시키고,
칠판에 빨간색으로 아주 큰 글씨로 적었다. 그리고 오자마자 볼 수 있게 칠판을 문 앞에 밀어놓았다.
오늘 선생님 팔 만지면 안 돼요!
(팔에 닿은 손 위로 X그림과 함께...)
아이들은 오전 내내 선생님이 코로나 주사를 맞았다며, 맞은 백신의 종류는 화이자라며,
아까 실수로 스쳤는데 선생님이 엄청 아파했다며,
선생님이 왼쪽 팔이 아프다는데 헷갈린다며,
장난으로 콕 찔러보는 장난꾸러기도 등장하고,
장난꾸러기에게 "야 너 선생님 아픈데 만지면 어떡해!!!!" 하는 친구들의 원성까지,
바라지도 않은 한 달 치 관심을 받았고,
애정 어린 손길(?) 덕에 여러 번 아파 폴짝 뛰었다.
특히 아이들이 어느 팔에 주사를 맞은 건지,
오른쪽 왼쪽 분간을 어려워해서
주사를 맞은 왼쪽 손목에 무려 5cm 두께의 리본을 묶어 두었다. 백신 맞았다고 광고하는 느낌.
점심시간이 되자 통증은 더욱 심해져 국통도 들지 못했다... 감사하게도 에듀케어 강사님이 다 도와주셨다....
겨우겨우 급식을 마무리하고 나니
열이 치솟기 시작했다. 체온계는 37.7이라는 숫자를 보여주었고, 코로나 방역 지침 상 37.5가 넘어가면 원인이 무엇이던 출근 중지였다.
시계를 보니 12시 40분,
50분만 참으면 교육과정 시간 종료다..
이제 와서 열나서 퇴근한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
버티고 버티다 눈앞이 노래졌다.
어지럼증이 찾아왔다는 신호. 어서 누워야 한다.
결국 교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얘들아... 오늘은 선생님이 하나도 못 도와줄 것 같으니 지금부터 천천히 정리하고 집에 갈 준비 스스로 해줘......"
아련한 한 마디를 남겼고 아이들은 고맙게도 척척 자기들끼리 알아서 정리하고 귀가 준비를 했다.
나는 누워서 희미한 말로 "저기 구슬 떨어진 거 주워줄 어린이...? 물통도 챙겨야 해. 가방 내 가방이 맞는지 확인하세요." 잔소리를 할 뿐이었다.
겨우겨우 몸을 추슬러 아이들을 방과 후 교실로 보내고 집에 갈 아이들은 하원을 시키는데,
내 꼴을 보고 어머님들이 탄식을 내뱉으셨다.
"어머 선생님 백신 맞으신다더니..."
"하루 쉬시지 그러셨어요. 쓰러질 것 같아요...."
원감님은 그런 어머님들의 반응을 보고 민망하셨는지 다른 반 하원을 도와주셨다.
"저는 괜찮아요... 이제 주말이니까..."
라고 어머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빠르게 들어갔다.
교무실에서 체온을 재니 37.9......!
원감님은 내 상태와 체온을 보고 나에게 미안해하셨지만, 이미 악에 받쳐 하원 시간까지 버틴 나는
2차 때는 병가 미리 상신해두겠습니다.
라고 싸늘하게 말했다.
곧바로 짐을 싸고 조퇴를 결재받은 뒤 평소 무서워서 절대 혼자 타지 않던 택시를 불러 집에 갔다.
"하.... 그냥 병가 쓴다고 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