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배우러 가는 게 아닌' 레슨

피아노, 그리고 사람

by 해봄

내 일상이 우울증으로 초토화되기 이전,

마음에는 화가 가득하고 몸에는 피로가 가득했지만

매주 한번씩 퇴근하고 꼭 가던 곳이 있었다


바로 '피아노 학원'

내 담당 선생님은 '베토벤 선생님'으로 불렸고,

나에게 베토벤 선생님(지금은 언니다)은

피아노 선생님인 동시에 인생 선배,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통하는 친구였다




처음엔 동요 반주를 배우러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고, 베토벤 선생님에게 배정되어 우리는 가르침과 배움만이 오가는 레슨 시간을 가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베토벤 선생님은 분명 친절하고 발랄한데 왠지 모르게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기'에 눌려 친해지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유아 발달 전문가이며 유치원 교사인 나와

음악 전문가이며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피아노를 가르치는 베토벤 선생님은,

결국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속 시원한 공감대 형성,

서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이도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공감대가 형성된 후에는 쉽게 친해졌고,


더 이상 나는 피아노를 배우러 레슨을 가지 않았다.

'베토벤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레슨을 갔다.



베토벤 선생님의 피아노 티칭 실력은 매우 뛰어나, 연주가 아닌 반주를 원하는 나에게 딱 필요한 내용과 수준으로 가르쳐주셨고!

따로 시간 내서 연습하지 않아도 유치원에서 생활하며 피아노를 많이 치게 되니...!


반년 정도가 지난 후에는 사실 나는 피아노 레슨이 필요 없었다. 내 피아노 실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유치원 수업에 필요한 반주 능력은 충분히 갖추었다는 판단에서다.


당시에 취미로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게 아니라 유아교사로서의 역량 증진을 위해 연수의 개념으로 피아노를 배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피아노 레슨이 필요 없어졌는데도,

사실 요즘 유치원 교실에서 대부분 피아노보다는 음원으로 수업하고, 실제로 나도 피아노를 잘 치면서도, 음원을 병행해 사용하는데....!

그녀와의 레슨을 이어나가기 위해 어려운 최신 창작동요 악보를 구해 가서 레슨을 받곤 했다.



그래서 우리의 레슨 시간은

밖에서 들리기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 수업이었지만 실제로 들어와 보면 그냥 피아노 선생님과 노는 게 좋은 나의 일방적인 플러팅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날이 갈수록 가까워졌고, 이제 밖에서도 만나 맛있는 거 먹고, 표정만 봐도 서로의 상황을 눈치채는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한계'라는 것이 찾아왔고, 일상생활이 점점 버거워지던 나는 피아노 레슨을 포기하게 되었다.

내가 공식적으로 피아노 레슨을 '쉬고 있는' 동안,



응원해 나의 영원한 베토벤

베토벤 선생님은 학원에서 독립하여

멋지게 자신만의 피아노 교습소를 오픈했다.

이게 베토벤 선생님의 꿈이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고, 오픈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민해왔기에, 진심으로 응원했기에! 나의 일처럼 기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나 '결국 학원을 그만두고 교습소를 오픈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에는,

애플 워치가 알려주는 미친 듯이 뛰는 심박수가 증명하듯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기쁨에 빠졌다




나는 피아노를 배우며,

서로의 인생 연주를 응원해주고, 더 아름다울 수 있게 살펴주는 좋은 친구이자 언니를 만났다.


이제는 멋지게 자신의 꿈을 연주하고 있는 베토벤 언니를 따라,


내가 보여줄 차례다! 내 인생을 연주하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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