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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Jul 24. 2024

그리운 둘째 숙부님

  (시골에서 소박하게 자라다 보면 조카는 삼촌을 좋아한다)

시골에서  소박하게 자라다 보면 삼촌과 조카의 관계는 돈독하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슬하에서 내가 장남이다 보니 어릴 때 나에게는  삼촌이 네 분 계셨다


사진의 주인공인 둘째 삼촌은 그림을 잘 그리시고  머리가 영특하셨다


대부분의 농촌 가정들이 먹고살기 힘든 시기라 삼촌은 읍내에 거주하면서 사업을 하시는 

고모 내외분이 운영하시던 가게에서 그림을 그리는

직업에 일을 하시다가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순간적으로 찾아온 급성맹장으로 들것에 실려

 읍내병원으로 가시다가 별세하셨다


그 당시 1960년대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큰길도 없어 마을에는  자동차도 들어올 수 없는

시대이었고. 산간 오지 마을이었다, 


이런 산골짜기 오지마을은 전기도 수도도 없어 읍내에서 고향집에 들어오는 방법은 먼지

자욱한  비포장 도로를 달려 우리 마을과 거리가

멀었던. 삼정마을에서 내려 숲이 우거지고

오솔길 옆에는 묘지들이 있는 으스스하고 무서운

산고개를 넘어 걸어야만 우리 마을과 집이 있다


1960년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둘째 삼촌은 그렇게 험한 숲길을 걸어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내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계시는 고향집으로 가끔씩 오시면 손님이 귀했던 시대라  큰 조카인 나는

삼촌이 좋아 엄청 반가워했다.

숙부님이 집에 오시면 할머님이 계시는 큰방에서

할머님과 어머님을 모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시면 어린 나는 옆에서 어르신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었다


그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내가 공부를 하지 않고, 할머님이 거처하시는 큰방에 있으면 그토록 자상하신 숙부님은 너는  빨리 할아버지 방으로 가서 공부를 하라고 할아버지가 계시는 사랑방으로 나를 쫒았다.


어르신들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듣고 싶었지만

열심히 공부하라는 숙부님의 성화에 못 이겨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방으로 건너온 나는 하기 싫은 공부를 수박 겉 핲기 식으로 대충대충 했다.


마을에서 같은 학년은 없고

그렇다고 돈이 없으니 아버지가 동아전과나

참고서를 사줄 리가 없고

모르는 문제들은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어

대충대충 공부하다 보니 성작이 좋을 리가 있었겠는가?

(삼촌의 결혼 혼례시진)

그런데 그 언젠가 어느 날 하루는 둘째 숙부님께서

고향집에 오시더니

 학교에서 치른 내 성적표를 보시고는 깜짝 놀라

 갑자기 할아버지 방으로 오라고 하더니 시험 문제지를 들고는 객관식이니 답안 네 개 문항 중 정답 한 개를 찍는 것이라고 차례차례  차분하게. 공부를 가르쳐 줘서 그 이후부터 시험 볼 때에는 숙부님한테 배운

학습 지도가 효과가 있어 100점 또는 95점 이상의

성적을 내니 선생님의 칭찬도 받았지만

처음에는 선생님도 의아할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공부의 맥을 짚어준 둘째 숙부님의

 지략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삼촌이 혼기가 꽉 차 결혼을 했는데 신혼 첫날을 보내고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여 의학지식이 전무했던 우리 가족들은 배 아픈데 된장이 특효약이라 생각하고 냉수에 된장을 풀어 마시도록 하다가

호전되지 않자 배를 만져 드리고 결국에는 자정이 넘는 시간에 들것에 실어 간웅국재를  넘어

이십 리 떨어진 읍내 원으로 가시다가  급성맹장이 터져 버려 별세하셨다.


그때는 병원도 없었고 급성맹장이 뭣인지도

의학지식이 전무한 1960년대라 어찌할 수

없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둘째 삼촌이 급성맹장으로 순간에 별세하자  이 집은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다


둘째 숙부님이 이렇게. 갑자기  별세해

다음날 밤 이웃집 남자분들이 다 와서 상여를 메고

(간다 간다!!! 정든 부모형제 먼저 두고 북망산천으로 먼저 간다)는. 구슬프고 슬픈 곡조를 주문하면서 상여 띄우는 연습하는 모습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나이에 귀중하고 먹기 힘들었던 떡을 먹게 되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떡을 먹었는데  할머니와 어머님

고모님은 대성통곡을 하면서 밤새도록 앞마당에서

울고 계셨다

아!!! 지금도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슬프고, 우울하고 둘째 삼촌이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핸섬하게 미남으로 잘생기고 머리도 영특해 형제간에 우애도 잘하셨던 둘째 숙부님이 살아 계셨다면

우리 집의 형편이 많이 좋아지고. 잘 살았을 것인데

......

            (몇 장 되지 않은 둘째 숙부님 사진)


이제 내 나이 70줄에 가까워 오니 그 옛날 함께

찍었던 사진의. 주인공들이 세상을 떠났다

사진을 보면 쓸쓸하고 공허하고 서글퍼져 가능하면

옛 사진들을 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자꾸만 손이 가고

지난 사진들이 보고 싶어진다


그럴수록 힘내자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실에 적응해 영화도 보고

바쁘게 살아가자


그래 오늘 7월분 컨설팅 다 끝났고 고등학교 동창들 만나 점심 먹고 커피 마시고ᆢ

 잘하고 있는 나를 다독거려 주자.  

그래 힘내자!!  옛날들만 생각하지 말고!!!


그 옛날 별세하셨던 작은 숙부님도 나를 응원하고

계시겠지!

(돌째  숙부님의 귀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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