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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Jun 24. 2024

사회공헌 보람 일자리와 자원봉사

  모든이들에게 자원봉사를 권유해  본다


졸업 후 국가의 부름을 받아 현역군인 사병으로 대한민국 최전방 전선인 강원도의 험한 오지 동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20대 초반에 가정형편이 어려워 4남 3녀의 장남으로 막중한 가계부 담을 느끼고 생계유지를 위해 아무런 생각 없이 불철주야 즉 주경야독하여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다가 3~4개의 직종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공직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못 배운 공부를 계속하고자 야간대학과 대학원을 마치면서 3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면서 각종 표창과 훈장을 수여받은 후 명예롭 게 정년퇴임을 한지도 어언 6년이  되어 간다.

35년의 직장생활은 초임봉급이 너무 작아 힘들기도 하였지만

행정의 최 말단인 동사무소에서 각종 민원발급과 새마을 사업 등 주민들과의 유대 관계 등 수많은 일들을

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결재를 하는 책임자 생활을 하다가 막상 정년퇴직 후 60대 후반에 사회에 진출해 제2의 직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같이 퇴직했던 몇몇 사람들은 주택관리사와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를 한 후 자격증을 취득하여 아파트 관리소장이나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를 개업한 동료도 있고, 어떤 동료들은 일반 건물에 경비원으로 취업하여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동료들도 있지만, 어린 시절에 인적도 드문 시골농촌에서 남의 땅을 임대하여 농사를 지으신

부모님 곁에서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10리 길을 헐레벌떡 달려와 굶주린 배를 보리밥과 밀죽으로 한 끼 한 끼를 해결하면서 밭으로 논으로 산에 나가 나무를 하며 아궁이에 소죽을 쓰면서 시골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신문배달과 책 전집 세일을 하면서 수많은 고생을 하며 학교를 다녔기에 직장생활을 마감 후에는 당분간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생각하면 짧은 세월이지만 이렇게 직장생활 35년을 끝마치고 1주일 정도는 아무런 생각 없이 집에서 쉬어봤더니 부지런한 근성이 몸에 베인 탓인지 몸도 근질근질하고 도저히 그냥 쉴 수가 없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50+센터에 찾아가 서너 개의 강의도 듣고, 서울의 유적 탐방도 신청하여 그동안 체험하지 못한 서울에 산재한 조선시대의 유적지와 유물을 탐방하다가 50+센터에서 교통비와 식대정도의 비용이

지급되는 사회공헌 일자리에 신청하여 서울둘레길과 북한산둘레길 위험시설을 점검한다는 안전요원 도우미에 신청하여 서류전형과 면접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러나, 현장에 배치되어 보니 관할하는 사무소에서는 마침,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등산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을 줍고 청소하는 일만 시켜 자존심도 상해 그냥 바로 그만둘까 망설이다가 꾹 참고 출근해 1주일에 3회 출근하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근무 첫째 날 파란색 조끼와 배낭 모자를 지급받은 후 시민들이 많이 찾는 등산로와 탐방로의 나무 계단과 주변의 흙들을 삽과 괭이로 평평하게 골라주고, 등산객들이 산에 버리고 간 휴지와 각종 캔, 음료수 병 등 쓰레기들을 비닐봉지에 수거해서 깨끗한 탐방로를 만들다 보면 온몸에 땀이 나 옷을 젖지만 약간의 활동비도 받고 공기 좋은 산에 나와 등산객들이 쾌적하게 산을 찾을 수 있도록 보람찬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일과 첫날에는 장갑을 끼고 삽과 곡괭이로 깊어지고 패인 길을 평탄하게 만들고, 빗자루로 나무계단을 쓸다 보니 옷에 흙과 먼지가 묻을 때면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나? 내일부터 그만 두자” 는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그래도 “참고 인내하자” 고 다시 생각을 고치면서 이곳에서 1년 동안 일과 봉사활동을 했다.


출근하는 날은 서류전형과 면접시험에 합격한 10명의 동료들과 함께 집에서 준비해 온 고구마와 김밥, 컵라면을 배낭에서 꺼내 산에서 일을 하면서 잠시 같이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눴더니 대부분의 동료들이 저와 비슷한 60대 초반 중반의 어르신으로 군대에서 대령과 소령으로 예편하여 공군 조종사로 재직했던 분의 경험담과

향토 예비군 지역중대장(동대장)으로 재직했던 예비역 장교, 몇 분은 대학교수로 재직하다가 지금은 시간강사로 출강하시는 분,

사업을 하다 어려워 사업을 중단하신 분, 공직에 계시다가 퇴직하신 분들의 각각 다른 분야의 직장 경험담들을 이야기하고 청취하면서 등산객들이 코를 풀고 버린 휴지를 집게로 집어 비닐봉지에 수거하고, 삽과 빗자루를 처음 들어본다는 대학교수 출신의 봉사자도 계시지만 이런 사회공헌일자리 봉사를 하다 보니 정말 좋은 경험이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사회 지도층 인사분들이 꼭 이런 봉사를 필수적으로 해봐야 한다고 한결같이 표현했다.

     

솔직히 말해서 냄새나고 악취 나는 더러운 휴지와 오물들을 집게로 집고, 빗자리로 쓸어 담아 청소를 할 때면

눈을 뜨고 봉사활동을 하고 싶지도 않고, 왜! 내가 죽을 때 돈을 가져간 것도 아닌데 남들이 버리고 간 더러운 오물들을 청소하면서 꼭 이런 일을 해야 되나? 나 스스로 반문하면서 그만두려고 수없이 생각하면서 집에 들어와 아내와 딸들에게 이야기하면 “아빠! 일주일에 3번 출근해 4시간 봉사(일)하는 것도 못해 포기할 거냐?” 면서 이야기하길래 꾹 참고 오전 7시면  운동이라 생각하고 점심을 준비해 도시락과 고구마 생수를 배낭에 담아 파란색 조끼와 모자를 가지고 등산화를 신고 작업장갑을 끼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1시간 동안  부지런히 산으로 출근해 등산로와 탐방로를 청소하고 길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이렇게 등산로와 탐방로 안내표지판을 젖은 헝겊으로 깨끗하게 닦아주고 등산객들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안내표지판을 바르게 세워주고 지저분한 등산로 계단을 골고루 평평하게 삽으로 골라주고 빗자루를 들고 깨끗이 청소할 때면 산을 찾는 남녀노소 등산객들이 등산로가 왜! 이리 깨끗한지 이제 알았다고  너무 고마워하시면서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면서 가지고 온 빵과 과일을 건네줄 때면 기꺼이 공손하게 사양을 하지만 이럴 때에는 정말 “내가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라는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았다.

   

언젠가는 봉사 활동을 하면서 20여만 원의 활동비도 받았지만 일자리를 담당하는 모 여직원이 우리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 본인들이 출, 퇴근 관리를 하고, 활동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없는 일이 하나 더 생겨 마치 귀챦다는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대하고 너무 차갑게 사무적으로 대하면서, 마치, 일을 하는 우리 봉사자들이 지저분한 쓰레기나 치우고 삽과 빗자루를 들고 일을 하니 못 배우고 먹고살기 위해서 공공근로나 취로사업 단순일꾼인 것처럼 잘못 착각하고 너무 냉혹하게 대하길래 정말 너무 무시당하고 갑질한 것 같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다음날 책임자를 조용히 만나 어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도 다들 4년제 대학 졸업하고, 일부는 사관학교 졸업 후 사회에서 부대장, 기관장, 책임자, 기업체에서 임원 하면서 퇴직 후 봉사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한다고 했더니 어제까지 갑질했던

담당 여직원도 이제는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갑질은 온데 간데없이 웃으면서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어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이제, 70대를 바라보는 인생후반기에는 항상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경청을 많이 하고 몸을 많이

움직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봐야겠다.


현역 시절 직원들을 지도하고, 결제나 했던 관리자 시절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고, 겸손하게 살면서 제2의 인생을 보람차게 봉사하면서 살아가면

건강에도 아주 좋을 것 같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이기려고 하지 말고, 겸손하게 봉사하면서 열심히 살면 인생의 후반기도 성공하는

삶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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