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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Jun 26. 2024

고향


어린 나이에 농촌생활이 너무 힘들어 삶을 바꿔보고자 무작정 서울을 동경하면서 장장 완행열차를 11시간 타고 꿈에 그리던 서울에 올라와 식당 주방 보조, 신문보급소에서 신문 배달 등 힘든 일을 하면서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43년을 한 후 65세에 일을 그만두었다.


65세가 지나니 바쁘게 살아왔던 탓인지 몸도 여기저기 아파오고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고향이 그리워
등산화를 신고 배낭을 메고 아무 생각 없이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서 5시간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

(군내버스가 3회씩 운행되는 고향집 전경)
(고향집 대밭)

어린 나이 15세까지 아궁이에 불을 피우기 위해 땔감나무와 풀베기, 고구마, 감자, 콩, 배추, 고추 등 식용작물을 심었던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냈던 고향으로 내려갈려니 마음이 즐거워 부풀어 올랐다

고향이 그리워 고향집에 찾아왔지만 부모님도 연노해 하늘나라로 떠나 집은 집 이건안 빈집이나 다름없다.


그 어릴 적. 가난한 살림에 이불 하나로 우리 7남매들이 옹기종기 단칸방에 들어 누워 산에서 직접 해온 땔감으로 아궁이를 따습게 지피우면 초저녁에는 방바닥이 너무 뜨겁고 새벽이면 열이 식어 방바닥이 너무 차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어머님을 속상하게 했던   우리 7남매들이었다.

이제는 이렇게 60대 중반에 고향과 부모형제가 그리워 아무런 생각 없이 고향을 찾아갔지만 부모님도 계시지 않고  아옹다옹 살아왔던 우리 7남매도 벌써 3명은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리고 고향에 묻혔으니 고향은 가슴 아픈 곳이지만 추억이 있는 곳이다.
오늘도 윗대 할아버지 할머님 산소와 부모님 산소, 누님과 남동생들 묘소를 방문하고 술 한잔 올리며 가난하고 힘들었던 60년 70년대를 회상해 보면서 무작정 고향을 찾아오니 어린 시절과 검정 고무신을 신고 10리 길 공동묘지와 고개를 넘나들면 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들이 생각난다.
가끔씩 그 당시에는 귀신을 봤다는 간담 어린 무서운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호롱불과 등잔불을 사용했던

외딴 시골집 마을에도 이제는 전기가 들어와 환하게 비치고, 마을까지 도로도 포장되어 하루에 세 번씩 군내버스가 운행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옛날들이 그리울 때에는 나 홀로 등산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고 나 홀로 고향집을 방문하지만 옛 이웃들은 돌아가시거나 고향을 떠나고 이제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향분들이 찾아와 띄엄띄엄 별장한채씩 늘어나 사라질 줄 알았던 고향이 되살아나니 너무 정겹다.

고향에 오면 그리운 옛 이웃들은 다들 고향을 떠났지만 조상님 산소와 변하지 않은 산과 논, 밭들이 내것은 아니지만 산과 시냇물과 논, 밭들은 60년 전 그대로여서 어린 시절이 그립고 부모님과 함께 검정 고무신을 신고 논, 밭에 나가 고구마 심고 배추 심고, 나무하러 다녔던 어린 시절들이 추억으로 생각나,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지만 옛날 옛적 가난한 시절에 뼈가 사무치도록  고생했던 기억들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저절로 나오지만 세월이 지나니 것 또한 추억이다.

그래도 마음이 우울하고 울적할 때  남매들과 부모형제가 그리울 때 아무도 없는 고향과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곳에 오면. 그저 마음이 평온해지고

평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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