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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Jul 03. 2024

논산 훈련소와 평발

강한 남자들의 요람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20세 전후에 징병검사를

거쳐 1급부터 5급까지 판정을 받아 현역 보충역

제2국민역으로 분류되어 현역병으로 입영하든지

아니면 지역 예비군 동대본부에서 복무기간을

짧게 복무하는 방위병 또는 면제들로 구분된다


이렇다 보니 과거에는 힘든 군대를 기피하거나

면제 또는 방위병으로 군 생활을 편하고 짧게

하려고 온갖 권력과 백 그라운드와 돈을 쓰다 보니

병역비리도 많지 않았나 생각된다.


1979년 징집검사에서 신체검사 1급 판정을 받아

광주사태(민주화운동)가 터지기 전인 1980년 4월

광주역에서 출발하는 야간군용 열차를 타고 쓸쓸하고

외롭게 연무대역에 도착해 육군훈련소인 논산 훈련소에 입영했다


입영을 하면 징병 대기 중인 장정들은 수용연대에서

대기를 하다가 갑자기 호출을 하면 여산 하사관학교나

공수부대. 훈련연대로 차출되는데 신체도 허약한 내가

백도 없고 돈도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하다 보니 

현역대상으로 1급을 판정받다 보니 가장 먼저 차출된 것이 단기하사였다.


단기하사에 차출되면 6개월 동안 여산 하사관 학교에서

고된 훈련을 받아야 된다는 소문을 듣고

운이 좋았는지 그 자리에 내가 없을 때 내 번호를 호출하여

단기하사로 차출되지는 않았다


수용연대에서 대기병력으로 10일 이상 대기하다 보니

광주에서 함께 온 병력들은 훈련을 받으러 계속 차출되다 보니

수용연대에 남아있는 대기병력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대기한 지 15일째 접어드니 군인 중 기장 힘들다는 공수 특전사요원으로 나를 호명했으나

계속해서 내가 대답을 회피하여 가슴이 졸여와 죽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그 순간을 피해 특전사 요원으로 차출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단기하사와 공수특전사 요원 차출에서 제외되어,

같은 날 함께 입영했던 광주병력은 전부다 훈련연대로 배출되고 나중에 입영한 부산병력들과

함께 수용연대에서 대기하면서 수용대기 23일 되는 날

25 연대인지 28 연대로 배출되었는데 솔직히 23일 동안 대기하면서 생리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대기하는 수용연대에서는 화장실이 고장 났는지

물이 나오지 않아서 그랬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화장실에 큰일 보러 가면 여러 장병들이 용변한 

그 자리에 일을 봐야 하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아 화장실에

가면 지독한 냄새와 악취 등 생각하기도 싫다


그래도 군인 같지 않은 대기하는 수용연대에서

거의 한 달간을 대기했으니 나의 심적 갈등과

고통은 헤아릴 수 없었다.


훈련연대에서 제식훈련과 각개전투 집체훈련

사격연습 총 격술, 사격  수류탄 투척  피가 나고

알이 베이고 이가 갈린다는 PRI훈련 등 등ㆍ

이렇게 4주간의 기초훈련을 받고 부산에서 후반기교육

6주를 받고 비무장지대를 담당하는 전방사단에 배치되어 하늘만 보이고  적막감만 감도는 전방에

배치되어 꼼짝도. 하지 못한 군인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사병들 봉급을 50만 원 100만 원씩 지급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전방에서 병장월급 팔천 원 받고 꼬박 3년을

복무하면서 내무반에서 불침번 근무하고, 시간만 나면

제대 후 사회에 나가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무원 수험서를 구입해 3년의 병영생활동안 틈틈이

공부했다


전역 후 경기도 경찰 순경시험에 응시하여 필기 면접

다 합격했더니 시험관이 다리를 들어보라고 하여

발바닥을 들여 보였더니 평발이라고 불합격시켰다


시험관에게 군대  징집할 때에는 신체검사 1급 현역병이라고 판정해서 단기하사와 공수부대

사병으로 차출하더니  제대해서 경찰시험 보니 평발이라고 탈락시키는 앞뒤가 맞지 않다고 항의해도

아무 필요 없었고 낙방했다.  참 아이러니컬 했다


내가  알기로는 평발은 병역이 면제되거나

보충역인 4급을 판정받아 방위병이나 보충역

제2국민역으로 편입해야 되었다.


그러나 돈 없고 백 없는 가난한 사람은 몸이

약해도 과거에는 1급 현역으로 등급 받아

군대에 갔다


학력도 간신히 고등학교 졸업이고 신체가 약해

수없이 쓰러졌는데도 불구하고 현역으로 입대시키고

부자들이나 돈 있는 집 지녀들은 많이 배우고 건강해도

보충역이나 면제 또는 단기간 근무하는 방위병으로

복무하였다는 사실을 사회에 진출해 알았다


평발인 관계로. 최종 경찰공무원.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여 하루하루 먹기 살기 위해서 죽도록 경비원 생활과 음식점 종업원 등

잡다한 일 을 하면서 꼭 성공하기 위해 힘들고 열심히 공부해 행정직 공무원이 되었다.

늦은 나이에 대학과 대학원을 힘들고 어렵게 다니면서 일과 학업을 함께 병행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과거의 병역관리와 비리는 너무 심하지 많았나 생각된다.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70년대 80년대에 비교하면 학생들 시위도 없어지고, 최루탄가스도 없어졌다.

현역으로 복무했던 복무 기간도 34개월 복무하던 것이 이제는 18개월로 줄어들었다.

병사월급도 3000원~4000원 하던 것이 지금은 50만 원~100만 원씩 받고, 병장 월급을 200만 원까지 

인상한다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도 적은 액수가 아닌 사병월급으로 공부하기도 좋아졌다.

이런 걸 보니 세상 참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근무하던 1980년에는 일병 2700원 받아 밖에 나가 라면 한 끼와 막걸리 한 병 사 마시면 사병 한 달 월급

고스란히 없어지는데...

그렇다고 가난했던 시골 부모님한테 돈 달라고 할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지금은 복무기간도 짧고 월급도 많이 지급하니 병사들이 은행에서 저축해 전역할 떼 목돈으로 찾는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에 빽 없어 현역으로 입영되어 3년을 보냈는데 전역 후 나와보니 체격도 건강하고 키도 크고

그 당시 대학도 졸업했던 공무원이나 있는 집 자녀들이 많이들 군대에 가지 않거나, 보충역으로 대충 짧게

복무하고 전역한 친구나 지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는데, 참 아이러니하다.


지금부터라도 남자들에 한해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필한 남자들만 구의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공무원

정치인을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면 하는 나의 생각이다.

그러면  현역병으로 징집되는 것을 기피하지 않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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