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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Apr 21. 2024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9화, 최전방 12사단 병기근무대 전우들을 그리워하며

앨범 속 사진을 정리하다가 문득 푸른 제복을 입고 나라를 지키던 모습의 1970년대 의 색 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벌써 44년 전 어느 봄날 강원 인제에서 군 복무 중 향로봉 고지에서 휴식시간에 전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그때는 군 복무도 36개월(3년)  이어서 너무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져 전역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국방부 시계만 쳐다보던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그러나 지금 사진을 보니 그립기도 하고 옛 전우들 소식이 궁금하고,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전선에 참호도 구축하고 험악한 동부전선 산하를 누비며 철 모를 눌러쓰고 총 들고 긴장감이 감도는 최전선을 지켰습니다. 푸른 숲이 우거진 신록의 계절에는 칠성고개 넘어 사격장에서 밤낮으로 수천 발의 사격을 하던 때를 생각하면 그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수천 발의 총알을 표적지에 백발백중하고 부대 우수 사격병으로 선발돼 전우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한 몸에 받고 포상 휴가를 가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해 봐도 웃음이 납니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가을에 오색 단풍이 들면 월동 준비로 험준한 전선에서 싸리나무 작업을 했던 시절도 있었지요. 계급 없는 유격장에 일주일 동안 출정해 다 떨어진 훈련복에 몸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건강하고 늠름했었지요.

(향로봉 정상에서)


진짜 군대생활은 겨울이라고 했던가요. 특히 그곳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몹시도 추운 곳이었습니다. 겨울이면 연병장에 쌓인 폭설을 삽과 괭이, 빗자루를 들고 밤낮으로 지겨울 만큼 치우곤 했지요. 그때는 왜 그렇게도 춥고 배고팠던지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때처럼 겨울이 되고 보니 전우들의 얼굴이 한 명씩 떠오르고, 보고 싶어 집니다. 길고 긴 33개월 혹독한 병영생

활로 강인함과 인내를 배울 수 있었던 내 청춘 20대에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이 오늘따라 추억과 그리움이 돼 유난히 사무칩니다.



강원 인제 원통.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죽겠구나’라는 군대용 어가 유명한 12사단 병기 근무대에서, 동부전선 최전선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동기들. 그 전우들의 얼굴을 한 명씩 떠올리며 이름을 불러 봅니다. 박종은·한호영·김문곤·정연칠·어윤정·손민기·김병삼 병장 등. 43년이 지난 지금도 얼굴과 이름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만 닿는다면 꼭 한번 만나고 싶다. 그 무덥던 여름날 유격장에서 유격훈련을 하고, 영하의 엄동설한에 전선에 나가 얼었던 땅을 파서 텐트를 치고 5일 동안 야전 천막을 치고 숙영을 하면서 동계훈련을 하며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

가을부터 폭설이 내려 수없이 제설작업에 투입되어 눈이 쌓이지 않도록 삽과 빗자루를 들고 밤새도록 연병장과 도로 위를 쓸면서 리어카를 끌고 지긋지긋하게 일했던 청춘의 피가 활활 타던 그 시절이 왜 그리운지  모르겠다.


부대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무장탈영을 한 전우를 찾기 위해  실탄을 장전해서 동료 전우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들!

 아쉽게도 무장 탈영한 전우는 스스로 총을 쏴 자폭을 하고 숨져 갔지만 그때 그들 모든 전우들이 보고 싶다.


어디 그뿐이었던가!  군수품 보급을 갔던 전우들이 차량 전복사고로 사망해 부대 분위기가 썰렁하고

옆 동료 사망으로 너무 슬펐던 일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내내 험악한 비포장 도로를 군용 트럭에 타고 삼복더위에 지치고, 겨울이면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모포를 뒤집어쓰고, 엄동설한을 극복하며 물품보급을 위해 가리산고개를 넘어 현리까지

다녔던 군 복무 기간의 추억들,,


철조망을 뚫고 간첩이 넘어왔을 때 밤잠을 물리치며 컴컴한 동부전선 계곡에서 매복근무를 함께 하면서  20대 청춘을 국가를 위해 불살랐던 전우들이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 싶다


식사 후에는 재래식 세척장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식기판을 들고 스펀지에 빨랫비누를 묻혀

초록색 식기판을 닦았던 추억,   하얀 러닝과 군용 펜티를 손으로 세탁해 1층 내무반 뒤뜰 빨랫줄에

걸어놓고 햇볕에 말리면서 행여나 다른 전우들이 훔쳐갈까 봐 조마조마하게 가슴 졸이던 일들!!

꼴통고문 선임이 군기를 잡겠다고 툭하면 군수품 창고에 후임들 집합시켜 줄 빳다를 친 선임병,

그리운 추억도 있었고, 너무 가혹한 군기와 폭력으로 너무 힘들어 탈영까지 하고 싶었던 1980년의

최전방 병영생활들!!  당시에는 힘들었어도 70여 년의 삶의 뒤안길을 돌아다보니 그래도 즐거운

추억이다.


지금은 사병 월급이 50만 원 100만 원 심지어 200만 원까지 인상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지만, 43년 전

병장 월급 3,600 원 수령해서 외출증 발급받아

(을지부대 유격장에서)

전우들과 함께 라면과 막걸리 한잔씩 두 번

먹으면 한 달 월급인지 용돈인지 다 떨어져 바닥났어도 지금처럼 불평 한마디 하지 못했던 80년대  초반의 군대 생활이었지만,

 젊은 청춘이 그리운 탓인지 목숨 걸고 나라 지킨

푸른 군복의 현역 사병시절과 전우들이 더욱더

보고 싶고 그리워진가 보다.

(연병장에서 축구경기를 끝내고)


지금은 전국 팔도와 해외로 흩어져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역전에 용감했던 용사들과

전우들 소식이 그립다



 


(월동 동계훈련 4박 5일 동안 영하의 날씨 속에

땅을 파서 야전캠프에서 세수도 하지 않고

훈련받던 그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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