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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Apr 20. 2024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8화.  고교시절 담임 선생님을 그리워하면서,

   1970년대 농촌에서 모두가 다 “잘살아보자”라고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농촌 외딴곳에서 태어나 힘들고 어렵게 공부했던 나는 농촌생활이 지긋지긋했다. 도회지가 그립고, 그래서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연합고사를 치르러 처음으로 광주시 땅을 밟았다.



무작정 광주 시내 고등학교로 진학하다 보니 자취하기 위한 방 얻을 돈도 없어 학교 진학을 포기할까 생각했다. 그러다 다행히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분의 자제인 김백중 친구가 광주에 자취방을 얻어 혼자 생활한다기에 함께 자취 생활을 하면서 같은 고교를 다녔다.



팍팍한 자취 생활을 하다 보니 연탄불은 항상 꺼져 있고, 툭하면 밥을 굶어 점심시간이면 친구들 몰래 수돗가로 가서 수돗물로 굶주린 배를 채우기 일쑤였다. 이런 학교생활은 계속됐고 수업료를 내지 못해 수시로 교무실로 호출됐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려니 정말 힘들었다. 이렇게 먹지도 못하고 돈도 없으니 학교생활이 재미가 없고 성적도 좋을 리가 없었다. 굶주림을 참고 혼자서 극복해 나가야만 했다.



나중에 면에서 근무하는 면서기 공무원이라도 하려면 어떻게 하든 고교는 졸업해야 할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석간신문인 전남일보를 배달하면서 힘겹게 3학년 1학기까지 마쳤다. 서울에 가고 싶어 허옥 선생님께는 취업이 돼 서울에 간다고 거짓말한 후 용산역까지 완행열차를 11시간씩 타고 도착했다.



무작정 서울로 와서 신문 배달을 하며 생활하다가 군대에 입대했다. 현역 군 복무 3년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니 취직할 데가 없어 행사장이나 전시장, 백화점에서 주차안내 등 임시직 일자리를 전전했다. 그러다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주경야독으로 서울시 행정직에 합격했다. 독서실에서 숙식하면서 남보다 빨리 승진하기 위해 방송통신대와 00대를 졸업하고 00대 지방자치대학원을 다니면서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정년퇴직을 하게 됐다.



추억은 없고 너무 아픈 기억이 많았던 고교 교정이 생각나 42년 만에 모교를 방문했지만 내가 힘들게 공부하면서 수돗가에서 물로 굶주린 배를 채웠던 그 시절 교정은 사라졌고, 이제는 공동주택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40년 만에 개최하는 동창 모임에 참석해 동창들을 만나 담임선생님을 찾았더니 연로하셔서 뵙기도 찾기도 어렵다고 한다. 44년 전 허 선생님이 졸업장을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생활했을까. 내가 바르게 성장했을까 수없이 생각해 본다. 선생님 덕분에 가난을 극복하고 공직자가 돼 늦게나마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었으니 선생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임영웅의 사랑역 가사처럼 광주역에서 용산역으로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과 서울을 오갔기에, 소년 시절을 생각하면 용산역은 나에게 아직도 눈물역이다. 이제 80∼90대가 되실 허 선생님이 40년 세월을 지나 인생 후반기에 접어드니 더욱더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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