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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Apr 20. 2024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7화.   장모님을 그리워하면서

서른 살의 노총각 소리를 들을 시절, 시골 노인분들의 중매로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아내와 결혼했다. 당시 아내를 만나 몇 번 만나보고 장모님의 적극적인 지지로 경주 최 씨 집안의 사위가 되었다.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은 시골 초등학교 동창으로 양가 가정이 서로 어려웠다. 논 한 마지기도 없는 너무 가난한 가정이어서 하천이나 들녘에 나가 정부에서 시행하는 일자리를 다니시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셨다. 오로지 잘 살아야겠다는 신념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시면서 근검과 부지런함으로 살아오신 의지의 한국인이다.

장인, 장모님이 결혼하게 된 계기는 두 분의 의사와 관계없이 양가 부모님이 우연히 약주 한 잔씩 마시면서 장인어르신과 장모님의 결혼을 추슬러 열아홉 살의 나이에 결혼하셨다.

신혼생활도 잠시뿐, 장인 어르신은 현역병으로 군대에 입대하셨다. 장모님 홀로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큰 딸인 제 아내를 낳아 남편이 제대할 때까지 홀로 키우시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생하셨다.                                        

이렇게 힘들게 생활하시다가 장인 어르신이 병역의무를 마치셨다. 제대하여 고향 집으로 내려와 두 분이 억척같이 고생하면서 힘들고 궂은일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들녘에 나가 일을 하시면서 오로지 먹을 것 입을 것 참으셨다. 논과 밭을 사 농사를 짓다가 경운기 운전 실수로 장인 어르신이 어린아이를 치어 병원비와 손해배상을 해주느라 힘들게 모아놓은 재산을 다 사용하고 또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래도 착실하고 부지런하셨던 두 분은 포기하지 않고,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낮이나 밤을 가리지 않고 각종 공사장과 정부 취로 사업장에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하러 다니시면서 슬하에 5남매를 키우느라 억척스럽게 고생하셨다.

장녀인 제 아내는 부모님이 가난해 어쩔 수 없이 방직공장에서 일했다. 어린 소녀 시절에 섬유를 짜는 근로자로 취업해 주간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산업체부설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내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대학까지 졸업한 자수성가형이다.

착실했던 장인, 장모님은 힘들게 생활하면서 돈을 벌면 무조건 논과 밭을 사고, 소를 구입해 가정을 일으키셨다.

동갑인 장인, 장모님은 열아홉 살에 결혼해 자녀를 낳으셨다. 큰사위인 나와 나이차이는 열다섯 살 차이뿐이어서, 처가에 내려가면 장인 어르신 친구분들이 사위랑 친구해도 좋겠다는 농담을 던지곤 했다.                                      

근면성과 부지런함이 몸에 밴 장인, 장모님이 열심히 살아오신 탓으로 처가도 부자가 되었다. 저 역시나 주경야독하면서 낮에는 직장생활, 밤에는 학교에 다니면서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리면서 열심히 살아온 탓에 빨리 아파트도 장만하고 생활기반도 일찍 잡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도 생기고,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콘도를 얻어 2박 3일 전국 여행도 다니려고 하는데 장모님은 회갑을 조금 지나 사찰 관련 일을 해주고 저녁에 집으로 되돌아오던 중에 교통사고로 2008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그 이후로 시골 처갓집을 가면 장모님의 빈자리 때문인지 그저 쓸쓸하고 적막하고 너무 울적하기만 해 장모님이 너무 그립다.



장모님 살아계실 생전에는 처가에 차를 가지고 내려가면 온갖 맛있는 음식을 미리 준비해놓고 계시다가 수시로 전화하시면서 "지금 어디쯤 내려오느냐? 몇 시 정도 도착할 것 같냐?"는 등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셨는데, 장모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안 계시니, 빈자리가 너무나 허전하기만 하다.

장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에는 처가에 가더라도 항상 먹을 것도 풍부했고 사람 사는 집처럼 온기가 있고 따스했다. 이제는 장모님 살아 계실 때처럼 온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골에서 먹을 라면과 고기, 과자, 빵 등 등 모든 것을 직접 사서 차에 싣고, 시골 처가에 내려가도 예전에 장모님 살아계실 때와 너무 다른 모습을 느끼고 찬바람이 스쳐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지금 장모님이 생존혜 계신다면 매번 반복되는 명절에도 큰 사위 입에 맞게 " 맛있는 음식 많이 준비해서

어디만큼 오고 있느냐? " 라고 수없이 핸드폰 소리가 울릴 텐데,

사위사랑은 장모님이라고 하는데 장모님이 60대 초반에 교통사고로 너무 빨리 운명하여 장모님 사랑을

받지 못하니 명절이 옛날과 다르다.

날씨 좋은 주말에는 하늘나라에 계신 장모님 묘소를 찾아뵙고 성묘를 하면서 평소에 큰 사위를 예뻐해 주셨던 장모님을 추모하고 그리워해 보련다.


이 글을 쓰다보니 처갓집에 내려가보고 싶지만 아무도 반겨줄 사람이 없어 참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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