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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에 대한 회상

by 자봉


너무나 좋은 세상이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도 복을 받았으며 행복하다고 느낀다.


지금으로부터 40년 50년 전만 하더라도 농촌의 대부분 가정들이 하루 세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배가 고파 굶는 일들이 비일 비재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도 힘들고 가난했었는데 왜 그리 학교에 보내지도 못하면서 자녀들은 5남매 7남매 9남매씩 낳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았을까?


봄이면 논에 볕싹을 틔워 쌀농사를 짓기 위해 볍씨를 담아 물에 며칠씩 담아 못자리를 만들어 들녘의 논에 나가 줄간격을 맞춰 벼를 심기 위해 못줄을 잡고 힘이 부쳐 조금이라도 늦으면 엄한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들녘에서 이웃들끼리 서로 상부상조하여 품앗이로 모내기를 하면 어머님은 시장에서 미나리와 검은 물을 내

뿜는 갑오징어를 사 와 약간 삶은 미나리와 갑오징어를 잘라 식초를 넣고 요리해서 고무로 만들어진 대아에

찰밥이나 고두밥을 담아 막걸리와 함께 머리에 이고 모내기를 하는 논으로 새참을 만들어 오셨다.


아침과 점심사이에 서로 품앗이로 일하는 이웃들이 잠시 허리를 펴고 쉬면서 막걸리 한잔에 듬북 하게 차린

점심을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채웠었다.

(부모님의 젊은시절)

얼마 되지 않은 잠깐의 휴식시간을 이용해 일을 하는 어르신들은 어린 나에게 창가(노래)를 해보라고 독려하면

노래를 못하는 음치이었어도 어르신들의 성화에 못 이겨 노래를 불러 잠시나마 일에 지친 이웃 어르신들에게

피로해소와 웃음을 줬었지!!!!


모내기를 하기 위해 겨우내 비워두었던 논에 물을 채우면 그 어릴 적 바라보는 논들이 마치 거대한 강처럼

보였고, 좁아서 걷기도 힘든 논두렁길을 두 살 아래 여동생을 등에 업고 들녘에서 일을 하는 어머니에게

동생 젖을 먹이기 위해 업고 가다가 힘도 없고 중심도 못 잡아 물 가득한 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어머님이

고무신을 벗고 달려와 젖먹이였던 여동생에게 젖을 물려 젖을 먹이면 양이 찼는지 곤이 잠들면 다시 동생을

업고 등에 포대를 감싸 집으로 와 깨지 않도록 잠을 재우곤 했던 시절들이었다.


가난 때문에 어머님은 수식군데가 해어져 구멍이난 러닝셔츠를 입고 동생들에게 젖을 먹이면서 바깥농사와

일을 끝내면 집에 들어와 냇가에 빨랫감과 방망이를 들고 가서 양잿물로 손수 만든 빨랫비누를 묻혀

방망이로 여기저기를 두들기면서 우리 7남매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삼촌들 옷까지 뺄래 하시느라

고생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깡촌 마을에서 집에서 100미터 떨어져 있는 공동우물에 물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대 가족들이 마실 물을 떠 와 항상 물항아리 세 개에 꽉 채우셨다.

아침이면 어둠이 가기 전에 일찍 일어나 오래되고 낡은 잠바나 겉옷을 주섬주섬 포개 입고 찬물로 쌀을

씻어 육중한 놋쇠에 쌀을 얹혀 쌀만 보리반 혼합으로 아궁이에 나무를 모아 성냥불로 불을 붙여

대가족들이 먹을 아침과 저녁을 지으셨다.


가난의 굴레 속에 당신의 자녀들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초등학교만 졸업시킨 큰딸과 중학교만 보낸

둘째 딸 어떻게 되든 수없이 결석을 하면서 장남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고등학교는 어렵게 갈 수 있었다.


종갓집 종부와 큰 며느리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들도 있어, 두 명의 시동생들은 남자이었기에

대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래도 졸업을 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지만,

정녕 딸이름이라는 말도 되지 않은 남아선호사상과 가난 때문에 자식들은 상급학교에 보내지 못해

평생을 후회하고 살았던 내 어머님!


시동생인 막내 작은아버지가 막내로서 동생이 없는 탓에 큰 조카인 나를 너무 귀찮게 해

어느 날인가는 참고 인내하다가 어머님께서는 " 왜, 시숙님은 내 아들과 큰 며느리를 귀챦게

하느냐? "라고 보다 못해 억울해 형수가 시숙인 내 막내 작은 아버지에게 화가 나 말을 했다.


보다 보다 못한 내 어머님이 참고 참다가 막내 시동생에게 화가 나서 하신 말씀에 부자가 된

숙부님은 아직도 내 어머님이 하신 말씀에 두고두고 서운해하신다

시동생들과 우리 7남매 뒷바라지를 위해 시골 농촌, 몇 가구 살지 않은 깡촌에서 평생 동안 고생만 하시다가

10여 년 전 교통사고로 별세하셨는데,


장례를 치르고 남동생이 재산을 상속받아 유품 정리를 하다 보니 유품이라고는 여동생이 사 드린 손가방과

성당에 다니는 게 낙이었던 성당 관련 수첩, 그리고 100원. 10원 총 760원 들어있는 작은 동전지갑뿐이었다.

가난한 산골짜기 종갓집 종부로 시집와서 거의 평생을 고생만 했을 뿐, 일생을 당신의 행복한 시간이

별로 없었던 생애를 살다가 가신 어머님이 애잔하다.


큰딸과 둘째, 막내아들인 3남매를 교통사고와 질병으로 당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남편인 아버지와 셋째 아들 부부의 허영 된 욕심과 그릇된 생각으로 거의 전 재산을 없애버리고

남동생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해 수년간 요양원에서 고생만 하시다가 하늘나라로 떠난 어머님이

보고 싶고, 그립다.


이제, 떠난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슬픔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되기까지 힘들게 만들었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 그리고 욕심 많고 허영심에 가득 차 전재산을

없애버리고 이혼하고 떠나간 남동생 부부를 원망해 보지만, 재산도 어머님도 다 떠났다.


그토록 고생과 고통을 줬던 가까운 일가친척, 친지들이지만, 가족들로 인해 너무 마음 아파하고

속상해하셨던 자상하고 정 많은 내 어머님이 세월이 갈수록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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