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전라도 촌놈이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4시간 동안 타고 가면 내 젊은 청춘을
몸 바쳤던 강원도 인제 원통이 있다
청춘이 피 끊던 푸른 국방색 군복을 입고 3년 동안
동부전선을 누렸던 부대다
박대통령 서거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사회가 온통 혼란스러웠던 1980년!
육군 현역입영 영장을 받아 논산훈련소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고, 춘천 보충대에서 1박을 한 후 소양강 댐에서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빛나는 작대기 한 개 육군 이등병 계급장을 가슴에 달고, 더불백을 둘러메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체 바짝 군기가 들어 긴장한 체 배를 타고 북상하다 보니 보이는 것은 전부
푸르른 산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곳이 강원도 인제! 신남으로
3군단 헌병대가 파견 나온 지역이었다
그 지역이 지금은 도로포장이 잘되어 차량이 지나가도 흙먼지가 나지 않지만, 1980년에는 비포장 도로여서 흙먼지 자욱한 비포장도로를 군용 트럭 뒷자리에 앉아 최전방 산악지대인 군 주둔지로 갔다
바로, 그곳이 동부전선 최전방 군사분계선과 비무장 지대 dmz를 사수하는 00사단 을지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자대부대에 배치되어 내무반에 들어서니 선임병들이 나이와 고향, 학력, 그리고 여동생이나 누나가 있느냐? 고 거칠게 질문하면서 군기를 잡기 시작한다.
때로는 모포를 얼굴에 뒤집어 씌우고 폭행을 일삼는 문제의 선임병도 있고, 툭하면 식사 후 물품 창고 안으로 집합시켜 쇠파이프로 줄 빴다를 치는 무식한 선임병도 있었다
밤이면 잠을 자다가 2시간 간격으로 전투복을 입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외곽으로 보초(초병) 근무를 가야 했다
보름달이 중천에 크게 떠 올라 밝은 밤에는 부모형제와 친구들이 그리웠다.
봄이면 att훈련과 칠성고개를 넘어 사격장에서 밤 낮 없이 수천발의 실총사격을 했고, 여름이면 매번 유격장으로 가서 1주일 동안 계급장 떼고 유격훈련을 받았고, 가을이면 월동장비 준비로 바빴고, 겨울이면 동계훈련을 받기 위해 완전 군장을 하고 5일 동안 꽁꽁 언 산속에 들어가 천막을 치고, 난방도 없는 차가운 천막에서 전우들끼리 체온으로 추위를 버티면서
훈련을 하며 나라를 지켰다.
겨울이면 폭설이 자주 내려 가슴까지 쌓인 전선야곡에서 겨울 내내 곡괭이와 삽, 빗자리, 리어카로 눈을 치우는 제설작업을 했다
간첩이 침투하여 철책선이 뚫린 흔적이 있으면 완전군장과 실탄을 장전해 험준한 동부
전선으로 투입하여 무장간첩을 소탕하기 위해
얼굴까지 검게 위장을 하고 매복근무를 갔던 20대 초반의 젊은 초병의 병영시절이 그립다기보다는 추억으로 생각난다.
총기와 차량부속 물품 수령을 위해 귀둔리와 현리 군수지원 사령부로 군용 트럭 뒷칸에 화물처럼 타고,
보급품 수령을 다녔다
겨울이면 추워서 내부반에서 가지고 온 모포까지 뒤집어쓰고 밤늦게 귀대하던 영하의 추위 속에도 전우애로 불살랐던 전우들이 왜 이리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서울 묵동에 살면서 부잣집 아들로 아버지가 자가용을 직접 운전해 부대까지 면회를 오면 그렇게도 부러워했던 어 병장이 보고 싶고 그립다.
아무리 찾으려고 노력해도 지금까지도 찾을 수 없는
어윤정 병장. 정주진 병장.
가만히, 몇 장 되지 않은 보물 같은 병영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추운 겨울날 동계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해 카메라도 귀하던 시절에 찍은 사진인데 고생했던 그날들이 지금 와서 감상하면 몇 장 되지 않은 사진들이 이렇게도 귀중하고
정겹고 소중하기만 하다
우리 부서는 행정업무가 주특기인 보급업무로
입대 전 선린상고를 졸업 후 산업은행에 취직한 뒤 재직 후 입대한 전세영 하사님. 명문 연세대 재학 중 입영하여 전역 후 세무 회계사가 성공한 한병장님.
외환은행 재직 중 입영한 여수상고 전교 1등 출신 박병장님. 울산대 무기재료학과 재학 중에 입영한 최고참 선임 최병장님ㆍ 나의 입영 동기이고 고교 동창의 친형이었던 지금은 광주 송정역 근처에
사신다는 정춘기 병장님ㆍ
울주에서 농협조합장을 하는 아버지 덕분인지 항상 성격이 쾌활하고 웃기도 잘해 병영생활에 활력과 웃음을 안겨준 정연칠 병장님은 지금 울산에서 7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소위 성공했다는 중소기업의 사장이 되었다
전주에서 조선무약 제약회사에 다녔다는 송병장님ㆍ
항상 막내로 눈치도 빠르고 선임들의 기분을 너무 잘 맞췄던 부산의 정주진 병장ㆍ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들은 대한민국의 ROK! 육군 출신이다
육군의 최전선은 경기도 강원도의 동부전선
서부전선 중부전선으로 나누어진다
험준한 산악이 많았던 강원도의 최전선인 동부전선에서 화랑담배와 은하수담배 한 개비씩을
나누어 피우던 1980년.
몸도 마음도 힘들고 고달픈 병영생활이었지만 푸르른 신록이 우거진 6월 보훈의 달에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군 생활을 보냈던 전우들이 보고 싶은 것은 전우애 일까!
지금은 육군병장의 월급이 백만 원대이고 병장이 200만 원대라고 한다.
1980년 초에는 병장 봉급이 4300원이었다.
내무사열이 뭣 이길래, 부대를 깨끗하게 청소 후 군용 트럭에 쓰레기들을 가득 싣고 병영 밖으로 나가 일을
끝마치고 라면 한 그릇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마시고 각각 조금씩 갹출하면 한 달 월급이 다 떨어진다
궁핍했던 사병들이 돈이 없어 너무 힘들었던 45년 전의 군대 생활이 자꾸만 생각난다
그때는 빽 없고 배경 없고 돈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몸은 허약해도 징집되어 현역사병으로 최전방 최전선에 투입되었다
지금처럼 그 당시에도 사병들에게 봉급을 삼만 원
오만 원이라도 지급했더라면 경제적으로 쪼달리지
않고 전공서적이라도 사서 공부했을 것이다
그래도 야간 불침번 근무 때 전우들은 내무반에서
소곤소곤 잠들어 깊은 잠을 자지만 불침번은 잠을
자지 않고 보초근무를 교대하는 초병들을 깨우기
위해 희미한 불빛 아래서 순간순간 공무원 시험
공부를 했다
다행히 전역 후 공무원 시험을 치러 서너 개 직종의 공무원 시험을 치러 합격 후 공직의 길을 걷고
끝맺음을 하였지만 ᆢᆢ
은퇴 후 70세에 다다르니 45년 전 강원도 원통에서 졸병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함께 밥그릇인 국방색 식기판을 닦으면서 힘겹고 눈물 나는 3년을 보냈지만
ᆢ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나의 전우 어윤정 병장, 정주진 병장, 최수준 병장, 최훈영 병장, 최상문 병장
이대실 병장. 이형호 하사. 한만희 중위 백중위
보급과장님이셨던 류근식 대위님이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이제는 세월도 가고. 너도 가고ㆍ꿈도 가고
사랑도 청춘도 다 가 버렸지만 운명처럼 우연히 라도
옛 전우들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반가울까?
다행히도 본부대 상황실에 근무했던 정만철 병장과
차량과 소총을 지원하는 정병장이 경상도 지리산 기슭에 살면서 포천과 울산 부산등 전국에 흩어져
다들 성공해서 노후를 즐기는 역전의 용사들을
잘 챙기고 있어 고마울 뿐이다
오늘도 육군보병 12사단 을지부대 병기근무대에서
20대 젊음을 불살랐던 45년 전의 용감하고 씩씩했던. 전우들이 단체카톡방을 만들어 서로 안부를 묻고
인생후반기의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다행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부대!
고인이 되신 노무현 대통령님도 우리 을지부대
전우이시다
자랑스러운 우리 보병 제12사단 을지부대 전우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