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배달

by 자봉

작열하게 내리쬐는 삼복더위 여름이 가는 게 그토록 아쉬움이 많은지 울창한 숲 속에서

매미들은 맴맴맴 울어대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오기를 재촉하는 탓인지 귀뚜라미 소리도 들려온다


오늘도 시니어 은퇴자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극복하고 우울해지는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 5시에 일어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서울역과 시청. 충정로역을 거쳐

한 시간 동안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본다


이른 새벽부터 하루를 열어가기 위해 분주하게 활동하는 사람들 중 오토바이에 신문을 싣고 조간신문을

배달하는 부지런한 사람들과 싱싱한 요구르트와 식제품들을 전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택배원들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건강한 사회와 시민들을 위해 하루를 빨리 시작하는

이분들이 존경스럽고 고맙고 감사하다


이제. 세월은 너무 빨리 흘러가 은퇴한 지도 10여 년의 시간들은 금방 지나간다.

오늘 새벽운동 때 도보가 아닌 오토바이로 여러 가지 신문을 배달하는 어른들을 보노라면

40년 50년 전 고등학교를 지방에서 다니면서 낮에는 어깨에 석간신문 100부를 둘러메고

1층 단독 기와집들이 즐비한 골목들을 누비면서 대문 앞을 지키는 큰 개들이 짖어대면서 달려들 때에는

물릴까 봐 그 얼마나 심적 고통이 컸던가!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주간에는 대충 가방만 들고 학교에 출석하고, 오후 수업이 끝나면 오토바이나

용달차를 타고 그날그날 출간되는 신문을 수령하기 위해 신문 인쇄 윤전대 앞에서 수천 부의 신문을

수령하여 보급소에 도착하여 신문 사이사이마다 홍보 전단지를 끼워 넣어 단독주택과 외딴 산기슭 아래

양계장까지 신문을 배달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주말인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영수증을 손에 들고 신문대금을 받으러 다니면서 구독자 확대를 위해

신문확장 작업도 하면서 힘들게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지만 졸업하기까지 그 얼마나 고통이

많았던가!


비가 오든, 폭우가 쏟아지든, 아니면 도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설이 내려도 개인사업인 신문보급

소장의 영리를 위해 배달원이었던 우리 중, 고등학생들은 다 같이 고생을 했다.


신문 배달을 위해서 언젠가는 단독주택가에 신문을 전부 배달하고 야트막한 뒷산에 올라

잠시 앉아 쉬면서 햇빛을 쬐고 있는데 스포츠머리로 짧게 깎은 청년 두 명이 내 곁에 오더니

쌍욕을 하면서 험악하게 굴더니 호주머니에 있는 것을 전부 다 내놓으라고 협박하면서

등산화인지 군홧발인지 발로 차려고 하여

큰소리로 "도와 달라" 소리치면서 번개보다 빠르게, 걸음아! 나 살려"라고 뒷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갔더니 다행히도 그 불량배들은 따라오지 않았다.


지금도 10대 후반에 학교를 다니면서 새마을 취로 사업장에 리어카를 끌고 일을 다니거나,

자취방 근처에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고생을 했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아찔했던 기억들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신문보급소장님은 사업 수지가 맞지 않아 다른 분에게 보급소를 매도하면서 어린 학생들이

그토록 고생하며 신문을 배달했던 서너 달분의 월급도 전임과 후임 보급소장에게 배달원들의

급료를 서로 넘기면서 끝까지 어린 학생들이었던 배달원들에게 서너 달 치 급료도 주지 않고

달콤한 거짓말을 하면서 밀린 배달원 월급을 끝까지 주지 않고 떼어먹었다.


너무나도 억울해 그 당시 노동청 00지부에 신고했으나 언론기관이라 그런지 흐지부지 끝나고

너무 억울해서 검찰청에 신고하겠다고 하면서 00 지방검찰청 앞 공중전화박스에서 신문사로

전화를 했더니 모 차장님이 검찰청에 신고하지 말고,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충장로에서

만나자고 해 약속장소로 갔더니 밀린 넉 달 치 배달원 급료에서 우선 한 달 급료만 주고는

기어이 나머지 석 달 치 급료는 주지 않고 떼어먹었다.


이른 아침부터 아니면 수업이 끝나고 오후에 힘들게 조간과 석간신문을 배달하는

학생들의 가정형편이 다 같이 어려운데 나이 어린 학생들이었던 신문 배달원들의

5천 원 하는 급료까지 지급하지 않고, 떼어먹은 그 당시 어른들은 그 이후 부자로

잘 살았을까!


어른이 되고 나서 악착같이 앞만 보고 살아오면서 지금은 다행히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도와주거나 봉사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세상은 좋은 사람들이 많지만 간혹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어린 시절 짧은 머리에 검정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석간신문을 배달하면서 힘들고 고단스러웠던 젊은 날의 학창 시절이건만 70대가 다 되어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니 사회에서 성공은 못 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봉사를 하면서 살아온 삶이었으니 인생 후회는 없다


그저 인생 후반기를 건강하고 즐겁고

마음 비우고 사는 게 행복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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