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이자봉

by 자봉

"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잔이 시 한수로 떠나가는 이자봉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거리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이자봉

방랑에 지치었나 사랑에 지치었나

나리봇짐 지고 가는 곳이 어데냐

팔도강산 타향살이 몇몇 해던가

석양 지는 산마루에 잠을 자는 이자봉"



은퇴 후 하루 한 달 일 년이 지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방랑하는 삿갓시인 김병연의

시와 글들을 애창하게 된다


지나온 인생 전반기를 되돌아보면 억척스럽게 살아온 인생의 여정이었고,

은퇴 이후 인생 후반기를 편안하게 살아보기 위해 험난한 청소년기를 거쳐

현재에 안착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눈보라가 휘날려 바람이 불던날에는 초가집이 무너질까 두려워

잠을 자다가 피하고.

역경의 세월을 살아왔던 베이붐 세대들이다.


인내심과 자립심으로 힘든 역경들도 헤쳐 나가면서 생업을 책임지기 위해

어려움도 참고 인내하며 견디면서 살아온 여정들,


너무 어린 나이에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빚보증을 서주고

수천만 원도 사기도 당해보고 인생 여정이 편안하고 녹록하지 않은 삶이었으나 모진풍파의 세월들을

참고 견디다 보니 60년의 세월이 흘러 이곳까지 왔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아이들의 뒷바라지와 가장의 무거운 짐을 않고 앞만 보고 살아왔으나

60세가 지난 중반을 맞이하고 칠순을 바라보노라니 살아온 인생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그리하여 선인들은 인생에서 60세에서 75세까지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기였노라고

말하는지를 이제야 알 것만 같다.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오면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집도 일찌감치 아내명의로

등기이전해 주고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매월 생계비가 나오게 해 놓고

아무도 살지 않은 고향집을 리모델링해 10년 동안 묵힌 밭도 동생이 경작하도록 만들어

서울과 내 고향을 오고 가면서 지내는 여유로움이 나를 너무 행복하게 한다.


젊은 날 부지런히 직장에 다닐 때에는 항상 은퇴 이후에는 고향과 서울을 오고 다니면서

노후의 생활을 보내겠노라고 다짐했는데 막상 시골집을 좋게 고쳐놓으니 사업에 실패한

남동생이 들어와 살고 있지만 그래도 고향에 내려가면 부모님은 계시지 않아도 마음 편안하게

들어 누워 편안한 잠을 잘 공간이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인생전반기는 업무와 승진, 공부,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취미생활도 다 접어놓고 스트레스가 쌓이도록 살아왔는데 은퇴 이후 하모니카와 기타도 배우면서 제주도와 해운대 영월 남해 등 등 국내여행을 하면서

여행수기도 글을 써서 공모전에 접수해 군수와 센터장 상장과 상금도 짭짤하게 받아 보면서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마음 비우고 여행하다 보니 방랑시인 김삿갓(병연)이 존경스럽기도 한다


김삿갓 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강원도 영월과 전남 화순 등 적벽강에 가보면 시인의

유적지가 보존되어 있는데 나이 들어 인생 후반기에는 김삿갓처럼 한번쯤 살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방랑 삼천리를 떠돌면서 인생을 살아간 김삿갓이 젊은 시절 가족들을 돌봐야 할 나이에

가족을 돌보지 않고 혼자서 방랑했으니 무책임하다는 평가도 있댜


그렇지만 이제 인생 2막 후반기가 되다 보니 은퇴 이후 새롭게 일하는 것도 적응하는 것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은퇴 이후 나이는 서로 달라도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마음이 맞은 남자직원

4명이 서울과 수도권의 유적지와 둘레길을 자주 함께 걸으면서 각각 호를 지었다.

어느 친구는 성씨와 이름에 ㅅ자가 3개가 있어 삼봉

어느 친구는 이름 끝자가 구 자로 끝나 구봉

다른 친구는 처갓집이 강원도 홍천 팔봉산 근처 이어서 팔봉

나는 북한산과 관공서에서 자원봉사를 많이 해서 자원봉사를 줄임말로 지봉이라고 하고

고등학교 동창모임에서 서로 총무 직책을 맡지 않으려고 해서

동창들의 추천에 의해 서울모임 총무를 자원봉사하는 마음으로 맡아서 학교 친구들이

자원봉사 네 글자를 두 글자로 줄여 나를 부를 때 자봉이라고 불러줬던 게

본의 아니게 호가 자봉이 되어 버렸다.


마음에 맞는 은퇴자 네 명이 북한산 둘레길을 걷거나 유적지를 여행하면서 막걸리 한잔을 마실 때에도

네 명은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삼봉, 팔봉, 구봉, 자봉, 이라고 호를 부르면서 생활한다.

이제 나이가 들어간 탓인지 많이 걷다 보면 다리도 아파, 기차나 지하철을 타고 여행하는데,

깊은 계곡이나, 숲이 우거진 산에 들어오면 어디를 가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자연을 벗 삼아

시 한수를 썼던 방랑시인 김삿갓이 멋쩍어 보인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너무 젊었을 때부터 팔도강산 금수강산을 떠돌아 가족들에게 소홀했을지 모르나

이 자봉은 61세까지 40년을 일하고 2개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직장생활과 공부하느라 그 얼마나

힘들고 바쁘게 살아왔던가!


61세 은퇴 이후에도 4~5년 동안 틈틈이 일도 하고 글도 쓰고 공부도 하면서 5천만 원의 비자금까지

모았으니 이제부터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전국을 방랑하며 글과 시를 쓰면서 여유가 있어 한가롭고

걱정이 없어서 속세에 속박되지 않는 " 유유자적" 하게 살아보고 싶다



누군가, 인생은 평화와 행복만으로 살 수는 없으며, 괴로움이 필요하다. 괴로움을 두려워 하지 말고

슬퍼 하지도 말라, 인생의 행복은 항상 괴로움이라는 고개 너머에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그동안

너무 많은 고생을 했으니 인생의 후반기는 평화와 행복이 오겠지........


오늘도 시간이 되거든 홍대 앞 코인 노래방으로 가 5천 원을 내고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로 시작하는

방랑시인 김삿갓 열 곡을 선곡해 생수 한 병을 마셔가며 목청껏 노래 한번 불러 보리라.








작가의 이전글코인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