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졸업한 지 50여 년 되어간다
1978년에 고교를 졸업했으니 일백 년의 절반가량
지났다
그 당시 3학년 1반이었던 급우들이 65명이었는데
서울에 살고 있는 급우들을 찾아보니 13명이다
이제 인생 70여 년을 살다 보니 고인이 되어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급우들도 8명이나 된다
먼저 떠난 동창들 중 목회자와 공직자도 있고, 성격도 좋은 친구도 많았는데 벌써 이렇게도 좋은 세상과 하직하고 떠나 버렸으니 너무나 애석하다
50년 되어간 빛바랜 졸업앨범을 펼쳐보니
그 당시 9개 클래스 600여 명의 동창들 사진이
펼쳐진다
그래도 우리 반은 문과 선임반으로 가장 빠른 1반이었다
대도시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시골 촌놈인 나는
툭하면 연탄불이 꺼져 밥 굶기가 일상화되어
운동장 가장자리 수돗물과 실내 화장실 수돗가로
수업을 마치면 손쌀같이 달려가 굶주리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수업시간에 쓰러진 적도 있었던 내성적이고 착한 학생이었다
지금은 불량한 학생들을 심하게 교육하지만
과거에는 체격이 크거나 폭력적인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어떻게 간신히 졸업장을
받았다
생각해 보면 기적 같다
그런 내성적이고 왜소한 체격에 70대까지 살고
있는 것도 축복을 받은 인생이다
고교 동창들이 600명 이상 되었는데 너무 많다 보니
많은 동창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졸업 30주년과 40주년 기념 모임을 전국적으로 개최하면서 그리운
동창들의 얼굴도 봤다
10개 반으로 반 편성되다 보니 2년 8개월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지나친
동창들이 많다
졸업앨범 첫 장을 넘기다 보면 1반이었던 우리 반
급우들의 단체사진과 개별사진이 실록 되어 있다
그런데 개인사진은 있으나 단체사진에는 내 사진이
빠져있어 아쉽지만 그래도 졸업장과 앨범까지 소지했으니 이 또한 다행이다
졸업사진에 빠진 것은 돈이 없어 10월에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인문계고등학교라 다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대학입시 준비를 하는데 그 당시 만 18세 이상이 되면
지방행정직 5급을 류 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져 청주대
법학과 야간에 입학하고자 충북 청주 지방행정직
시험에 응시하려고 했는데 주소지가 그 지역이 아니어서 응시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경제적인 사유로 정상적인 연령대에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다가 30대가 되어 서울에서 공무원이
되어 방송대 행정학과와 흑역사가 많은 흑석동의 ㅈ대학을 늦게 졸업했지만 늦게라도 공부했던 게 다행이다
동창들 중 성공한 친구들도 많지만 지금껏 얼굴도 모르다가 동창회모임에 참석할 때면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금방 가까워졌다
이과인 9반 반창회가 조직되고 문과인 1반 우리 반도
반창회를 만들어 보고자 첫 반창회를 시작하니 23명의
급우들이 참석해 43년 만에 얼굴을 맞대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가웠다
우리 반에서 교장으로 은퇴한 친구도 3명이고.
대학교수와 치과의사. 그리고 사업체를 운영하는
급우들이 상당했다
나처럼 33년을 공직으로 보내면서 평범한 삶을 살아온
친구들도 있지만 반창회에 참석하는 친구들 중 내 삶은
중간이하의 수준이지만 그래도 은퇴 후 채무 없고
타인에게 부탁할 정도의 생활은 아니니 잘 살지는 못했어도 중산층 이하의 삶은 아닌가 싶다
교통이 편리한 사당역 근처에서 종종 1반 반창회 모임을 개최하면서 우정도 쌓고 다시 올 수 없는 젊은
시절들을 회상해 본다
학창 시절 궁핍해 고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그 친구의
신세를 많이 져 그 친구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이렇게 50여 년 전의 동창생들 중 우리 반이었던 1반
급우들을 종종 만나 반창회를 개최하고 있으니
얼마나 우리들은 행복한 사람인가!
급우들이 아프지 않고 백세까지 다 건강해서 99세까지88하게 살다가 2,3일 아픈후 4 망하면
행복한 인생이 아닐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