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상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소식이 전국을 흔들고 있을 때 나는 강원도 최전방 12사단으로 입영했다. 혹한과 긴장 속에서 3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나올 때, 나는 제대증 한 장만 들고 있었다. 세상은 나를 반겨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서울로 올라와 건물 경비를 서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렇게 버티던 시간이 쌓여 1984년, 마침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1985년에는 ㅇㅇ운동장 관리사업소에 배치되었고, 나는 스물다섯의 나이로 처음 안정이라는 단어를 가까이에서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안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무렵, 초등학교 동창 **백○○**이 불쑥 나를 찾아왔다. 반가움도 잠시, 그는 어렵다는 말과 함께 며칠 뒤 꼭 갚겠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친구라는 이름 앞에서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 내 통장의 돈뿐 아니라 직장 동료들에게까지 빌려 100만 원을 마련해 건넸다. 그는 2부 이자를 주겠다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키는 듯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도 모두 거짓이었다.
그때 나는 ‘보증’이라는 말의 무게도 모르던 나이였다. 공증이 무엇인지, 보증용 인감증명서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300원짜리 목도장 하나를 들고 친구와 함께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아 건네주었다. 그 단순함과 무지함이, 몇 년 뒤 내 인생을 뒤흔들 재앙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남의 돈까지 빌려 그에게 건네주고, 보증까지 서주는 무모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돈을 갚겠다던 며칠은 끝내 오지 않았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을 갚으라는 사채업자가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고성과 협박으로 사무실을 흔들어 놓았고, 나는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창피하고 두려웠다.
곧이어 내 월급에는 압류가 걸렸다. 한 달 10만 원 남짓한 봉급에서 33%가 빠져나갔다. 그 2년은 마치 20년처럼 길고 고통스러웠다. 매달 압류 통지서를 받을 때마다 가슴은 돌처럼 무거워졌고, 잠들기 전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그는 그 당시 부자 소리를 듣는 분이었다. 처음에는 “아들 대신 갚아주겠다”라고 말하던 그도, 아들이 도망가 버렸다는 말을 듣자 표정이 굳어지며 태도를 돌변했다.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다.”
그 말은 나의 마지막 기대를 무참히 깨뜨렸다. 피해자의 절망은 상관없고, 자기 자식만 감싸는 그 차가움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는 결국 친구를 사기죄로 고발했다. 경찰에서는 “고발하면 돈을 받아줄 수 있다”며 오히려 고발을 권하기까지 했다. 그 말에 작은 희망을 걸었지만, 그는 끝내 잡히지 않은 채 기소중지자로 남아 있었다. 나는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세월만 흘러갔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는 결국 붙잡혀 구속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사기죄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6개월.
그렇게 그는 쉽게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젊은 시절의 빛나는 시간과 평생의 상처를 잃었는데, 그는 몇 달의 구속으로 모든 것을 털고 나와
지금은 해외여행을 자기 집 드나들듯 하면서 골프와
향락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다
피해를 당한 내가 옆에서 보노라면 오히려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억울함은 마음 구석 어딘가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이, 그 모든 고통보다 더 나를 힘들게 했다.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으며, 한 번의 배신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오랫동안 짓누를 수 있는지, 나는 그때 겨우 스물몇 살의 나이에 뼈저리게 배웠다.
지금도 사기와 횡령 같은 경제범죄는 끊이지 않는다. 서민의 삶을 무너뜨리고, 청년의 희망을 빼앗고, 노인의 마지막 버팀목을 짓밟는 일들이 반복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기범들은 몇 년 만에 사회로 돌아온다. 피해자들은 남은 생을 잃어버린 신뢰와 고통 속에 살아가는데, 범죄자들이 너무 쉽게 일상을 되찾는 모습을 보면 법의 무게가 무엇인지 묻게 된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사기범죄는 단순한 금전 피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는 범죄라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는 것을.
비록 그 상처는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한 가지 바람을 품고 살아간다.
나처럼 억울하게 청춘을 빼앗기고, 수십 년 동안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우리 사회가 사기범죄를 결코 가볍게 보지 않고, 서민의 삶을 지킬 수 있는 제대로 된 법과 제도를 마련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그것이 내가 겪은 상처가 남긴 마지막 의미이기를 소망
하지만 나쁜 일을 저지른 가해자에게는 처벌받는 시효기간이 백 년이나 무한정 기간으로 늘려 사기범죄
가해자들이 평생 동안 돈을 벌면서 피해자에게 갚도록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