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리던 날

by 자봉

금년 들어 첫눈이 내린다. 첫눈치고는 폭설이다. 창밖으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니, 오늘 퇴근길이 꽤나 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오는 날이면 어릴 적 시절이 문득문득 떠올라 마음이 오래된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렸을 때 눈이 내리면 날씨는 벌써 영하로 떨어져 또랑가 옆으로 난 길에는 고드름이 길게 뻗어 있었다. 작은 또랑을 따라 걷다 보면, 바람도 물도 얼어붙어 사각거리는 겨울 특유의 소리가 귀를 감싸곤 했다.


그 시절 우리 집 마루에서는 어머니와 작은어머니가 다듬이질을 하셨다. 다듬잇돌을 올려놓고 두 분이 마주 앉아 방망이를 ‘탕탕’ 두드릴 때마다 겨울 하늘 아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소리가 참 좋았다. 다듬어진 무명옷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입을 옷을 손수 만들어 드린 소중한 옷이었다. 흔한 옷 한 벌도 정성 가득한 시간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던 10대와 20대 초반, 우리는 등유를 넣은 등잔불 심지를 손으로 다듬어 방 안을 밝히곤 했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지내던 그 시절은 그립다기보다는 마음이 저릿해지는, 아픈 추억에 가깝다. 방바닥은 검은 가마솥을 올려놓던 아궁이에 참나무와 말린 나뭇가지를 넣어 피워 따뜻하게 덥히는 온돌방이었다. 겨울밤이면 온돌의 은근한 온기에 온 가족이 모여 자곤 했다.


눈이 내리던 날이면 사랑방에서는 할아버지와 제가 잠을 잤고, 건넌방에는 할머니와 여동생이, 가운데 큰방에는 부모님과 동생들이 함께 누웠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방 안은 참 따뜻했던, 그 시절 겨울밤만큼 좁은 방에서 온 가족이 이불 하나로 잠을 자다 보니 편안한 잠자리는 아니었지만 가족 간의 정 많은 세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절을 함께하던 많은 가족들이 제 곁을 떠나갔다. 어머니, 누님, 그리고 두 남동생마저도 너무 이른 나이에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시간이 흐르며 남은 제 삶은 늘 그리움과 허전함이 뒤섞인 긴 겨울 같았다.


올해 첫눈이 내리는 오늘, 다시금 그리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른다.

떠나간 가족들이 유독 더 보고 싶고, 더 그리운 첫눈이 내리는 밤이다.


이렇게 눈이 내리면 은퇴 전에는 전 직원에게 비상근무령이 하달되어 빗자루와 삽을 들고

경사진 언덕과 골목골목에 염화칼슘을 뿌리면서

밤새도록 눈 치우는 제설작업을 하였는데ᆢᆢ


이제는 은퇴 후 70고개에서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자주 기억하고 추억을 되새겨본다


지난날들이 힘들고 어려웠어도 세월 지나고 보니

추억으로 간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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