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친목 모임

by 자봉

사무실 근처에는 별관에 마련된 단독사무실이 따로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현관문을 열면

서류철 냄새가 뒤섞여, 20여 년 전의 공기 그대로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곳은 거주지 우선주차장과 공영·개방주차장을 새로 신축하고 관리·감독하는 주차시설 전담부서였다. 도시에서 자동차는 점점 늘어났고, 주민 민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다.


나는 이곳에서 끝없는 민원 속에서 주임 계급장을 떼고, 초임 간부인 계장으로 승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내 행정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시간이었고, 스스로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던졌던 시간이었다. 계장이라는 자리가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윗사람 눈에 조금이라도 잘 보일 수 있을지… 작은 보고서 하나에도 심장이 조마조마, 늘 가슴을 졸이며 3년을 버텨냈다.


그때 유행처럼 돌던 말,

“사오서칠(事五署七)”

사무관 승진하려면 5천이 필요하고, 서기관 되려면 7천이 필요하다는 씁쓸한 농담이 왜 생겨났는지… 지금도 아득하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그 말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공직사회에 냉소를 퍼뜨렸고, 나는 그 말이 돌 때마다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지나고 나서 보면 잊어버리고 싶은 일이지만, 그 시절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버텼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같은 기억이다.


좋지 않은 기억들은 시간이 흐르며 풍화되듯 조금씩 지워지지만, 그럼에도 마음 속 깊이 남아 따스함을 주는 사람들은 있었다.

늦은 나이에 임용되어 승진이 늦었던 내게 따뜻한

격려와 근평까지 잘 챙겨준 오국장님

송과장님, 나동장님, 강동장님,

정사무관님, 이사무관님…


서로 마음이 통했던 열 명 남짓한 동료들과 은퇴전 **‘주차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은퇴한 지금까지도 꾸준히 만나고 있다. 힘든 부서였던 만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했고, 그만큼의 우정이 자라났다는 뜻이리라. 직장이라는 이름 아래 보냈던 세월 속에서도, 이렇게 빛나는 인연이 남았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그 부서에서 근무했던 시절은 힘겨웠지만, 좋은 날들도 분명 많았다.

동유럽으로 산업시찰 겸 포상휴가를 갔던 일,

장기재직휴가를 활용해 아내와 함께 런던을 포함한 서유럽 5개국을 여행했던 일…


그때 찍었던 사진 속 우리의 웃음은 지금 봐도 선명하다. 삶이 쉽지 않았던 만큼, 그 여행들은 내게 큰 보상과 같은 추억이었다.


아직도 은퇴하지 않고 현역 팀장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강팀장도 보고 싶다. 분명 바쁘겠지만, 곧 있을 정기 모임 자리에서 다시 마주 앉아 웃으며 지난 시절을 이야기하게 되겠지.


오늘도 이렇게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추웠던 세월도, 힘들었던 순간들도

어느새 따뜻한 기억으로 변해있는 것만 같다


곧 승진할 예비 사무관인

정사무관은 승진할날을 학수고대하며 오늘도 현장에서 조용하고 묵묵하게

일을 하고 있다

우리 모임 총무직까지 맡아 주니 을씨년스럽게 오늘처럼 눈이 쌓이고 추운날 고마운 동료라고

생각된다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김팀장도 건강하게

살아 있었다면 우리들 모임에 빠짐없이 자주

참석할것인데 ᆢ

왜 이리 빨리 가 그리웁게 만들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첫눈과 동부전선 이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