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언제나 소리 없이 끝난다.
한때 불붙던 단풍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무 아래에는 젖은 낙엽만 남는다.
사람들은 그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지만
나는 그 안에서 계절의 체념을 읽는다.
이제 나무에는 잎이 없다.
아니, 자세히 보면
가지 끝에 단 한 장의 잎이 남아 있기도 하다.
바람에 떨며 떨어지지 못한 잎.
그 잎을 볼 때마다
오래전 읽었던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조용히 떠오른다.
늦가을은 언제나 우리를 겨울로 밀어 넣는다.
그 길목에서 사람은
삶의 끝과 마주하게 된다.
무상함이 문득 고개를 들고,
지나온 세월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요즘은
부모를 간병하는 자식들마저
노인이 되었다.
수명이 늘어났다는 말 뒤에는
견뎌야 할 시간이 길어졌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
아픈 부모 앞에서
자식의 말이 줄어드는 이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부모를 집에서 모시던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장남·종손이라는 말,
책임이라는 말,
가부장이라는 오래된 그림자 속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세대.
달력은
어느새 마지막 장을 향한다.
12월은 끝이 아니라 이어짐의 시간이다.
새해는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던 하루들 위에
조용히 덧입혀진다.
사라진 사람들 또한
그렇게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는
여든셋까지 사셨다.
그러나 그 삶은
이미 여러 번 무너진 뒤의 시간이기도 했다.
두 아들과 큰딸,
세 명의 자식을 먼저 보내고
어머니의 시간은
늘 상실의 그림자 속에 있었다.
살아 계셨지만,
이미 많은 것을 떠나보낸 얼굴이었다.
실성한 듯 보이던 어머니를 위해
내 아내는
아버지와 함께
장흥읍 성당에 다니도록 했다.
신앙은 기적을 주지는 않았지만
다음 하루를
넘길 힘은 주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이십 년을 더 사셨고,
내가 퇴직하기 직전인
2016년 가을,
추석을 며칠 앞두고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아버지는
단단하고 고집 센 분이다.
단단함은 때로
냉정이 된다.
어머니가 떠난 뒤에도
아흔을 넘긴 아버지의 마음은
늘 자식보다
손자에게로 향했다.
장남이자 종손인 나는
그 마음의 바깥에 서 있었다.
대대로 내려오던
조상들이 잠든 선산,
칠만 칠천 제곱미터의 임야는
이혼으로 남이 된
작은 며느리가
친권자라는 이유로 행사해
손자 찬혁이의 이름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결국
모두 팔려
이름도 모르는
타인의 땅이 되고 말았다.
조상 산소와
백 년 동안 이어온 그 많은 임야를
지키려다
나는
검찰청과 경찰서를 오가며
하루 종일 조사를 받아야 했다.
끝내 무혐의였지만
그 시간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딸만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한 것이
죄가 되는 세상이라면
나는 이미
여러 번 유죄였을 것이다.
이제는
아버지도, 동생도
그 누구도
쉽게 미워할 수 없다.
백 년 넘게 이어오던 시간은
한 세대에서
허무하게 멈췄다.
설명도, 사과도 없이
그저 그렇게 끝났다.
분노와 허무가
번갈아 마음을 지나갔지만
시간이 흐르자
남은 것은
말없는 체념이었다.
아버지는 지금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워하는 마음만으로
살 수도 없다.
가족이란
끝내 끊어지지 않는
선 같은 것이어서.
나는 오늘도
늦가을의 나무를 바라본다.
끝내 떨어지지 못하고
남아 있는
잎 하나를 보며 생각한다.
삶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빛나던 순간이 아니라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것들이 아닐까.
원망은 결국
다시 내 몫이 된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살아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