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휴대폰 활용 교육은 나와 같은 은퇴자들에게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주고,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작은 창이 되어준다. 은퇴 이후 시간은 많아졌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하루의 무게는 전혀 달라진다.
요즘 들어 눈도 부쩍 침침해지고,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이유 없이 피곤하다. 나이가 들면 내려놓고 살아야 편하다고들 말한다. 조금 손해보고, 조금 덜 욕심내며 사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이는 길이라고. 하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는 삶이 정말 편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치매 인구가 해마다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머리가 조금 아프더라도 배우고 익히는 일이 노년의 의무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1980년대에는 볼펜으로 기안을 쓰고, 타자수에게 문서를 맡겨야 일이 처리되던 시절이었다. 286 컴퓨터가 등장하고, 이어 386, 586으로 바뀔 때마다 세상은 숨 가쁘게 달려 나갔다.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늘 한 박자 늦었던 세대, 어쩌면 우리는 가장 불행한 70대일지도, 아니면 그만큼 많은 고비를 넘기며 살아온 행복한 70대인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다들 한 번쯤은 허리를 굽혀 역경을 견디며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이다.
은퇴한 동기들 가운데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노후가 걱정 없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집에 있자니 답답하다며, 하루 꼬박 근무하고 24시간을 쉬는 아파트 경비일을 택한 친구들도 적지 않다. 가끔 점심이나 커피를 함께하며 속내를 나누다 보면, 은퇴 후에도 단순한 일이나 경비, 요양보호사, 학교 보안관 같은 일을 하며 용돈을 벌고 삶의 리듬을 유지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은퇴자들끼리 만남도 늘 편안하지만은 않다. 밥값, 술값, 커피값, 게임비 앞에서 괜한 눈치가 오간다. 어느 날은 두 시간 넘게 당구를 치고, 인당 2만 원씩 내어 점심과 게임비를 계산하자고 했더니 돈이 없다고 슬그머니 자리를 뜬 사람도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지갑을 여는 마음, 그 사소한 배려가 점점 귀해진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만 자주 만난다.
집에 오래 머물면 어느새 ‘삼식이’가 된다. 그러면 아내의 잔소리도 덩달아 늘어난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이면 도서관에 가거나 가까운 산을 찾고, 지하철을 타고 수도권의 재래시장을 돌아다닌다. 싱싱한 농수산물을 싸게 사서 작은 배낭에 담아 오면, 아내의 얼굴도 한결 누그러진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부부 사이에 불필요한 말다툼을 피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현직에 있을 때는 직무관리, 인사관리, 양성평등, 성인지 교육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교육을 받았다. 은퇴 이후에는 종합복지관이나 주민센터에서 인문학 강좌와 자서전 쓰기, 붓글씨, 휴대폰 활용 교육까지 배울 수 있으니 오히려 지금이 더 풍요롭다.
나는 구청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휴대폰 활용 능력반에 가장 먼저 신청했다. 매주 한 번, 석 달 동안 오전 9시 주민센터 교육실로 향한다. 수강생은 60대, 70대는 물론 80대 할머니들까지 다양하다. 와이파이를 잡는 법, 사진을 잘 찍는 요령, 찍은 사진을 보정하는 방법, 인공지능으로 사진을 합성하고 동영상을 만드는 법까지—강의를 듣다 보면 노트에 메모하느라 정신이 없다.
집에 돌아오면 배운 것을 잊지 않으려고 다시 연습해 보고, 아내에게도 하나씩 알려준다. 그럴 때면 괜히 어깨가 조금 올라간다. 남편으로서, 아직은 쓸모가 남아 있다는 작은 증거 같아서다.
친구들 사이에서 비용 문제로 은근한 긴장을 겪지 않아도 되고,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이 나는 참 좋다. 인생 후반기에도 배우고 익힐 수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삶은 다시 탄력을 얻는다.
하루 종일 집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70대 동료님들께 말해주고 싶다. 치매 예방을 위해서라도, 아니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주민센터와 평생학습관, 노인복지관의 문을 한 번 열어보시라고. 무엇이든 배우는 순간, 노년은 다시 현재형이 된다
무조건 복지관이고 평생학습관이고 경노당이라도
찿아가서 아무거라도 무조건 배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