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이 머물던 강촌

by 자봉




경춘선을 타고 춘천 쪽으로 가다 보면, 열차는 잠시 강촌역에 선다.

‘강촌에 살고 싶네 ,’ 노래 가사가 떠오르는 그곳은,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젊음이 가장 뜨겁게 숨 쉬던 공간이었다.


그 시절 강촌은 늘 붐볐다.

통기타를 멘 대학생들이 MT를 오고,

북한강 위 다리를 건너며 웃고 떠들던 풍경은

당시의 젊은 날을 상징하듯 생생했다.


나는 1978년,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무작정 광주역에서 완행 야간열차를 10시간씩 타고 서울 용산역으로 올라왔다.


대학보다 먼저 닥친 것은 ‘공부’가 아니라 ‘생계’였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음식점에 취업했고,

어느 날 단체 야유회로 강촌에 가게 되었다.


강촌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대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며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너무 부럽고, 또 아득했다.

나는 이미 고3, 2학기 10월,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치른 뒤였지만

캠퍼스 대신 노동 현장이 나의 삶이 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하루하루 벌어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았던 시절,

야간대학 회계학과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조차 낼 수 없어 그만두어야 했다.

그때의 서울은

꿈을 품기에는 너무 차갑고,

포기하기엔 너무 배고픈 도시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월급이라고 2만원을 받아

이제 전기가 들어오는

고향집에 전파상에서 중고 흑백 TV 한 대를 사만원에 겨우 사서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던 시골집으로 싸 들고 내려간 적이 있다.

그 TV를 보며 기뻐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은

지금도 마음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이후 징병검사 1급을 받아

현역병으로 군에 입대해

강원도 인제의 12사단에서 3년을 보내고

다시 사회로 나왔다.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는

건물 경비, 막노동,신문배달,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2년 넘는 세월을 버텼다.


경찰직, 철도청, 우체국, 김포국제공항 관리공단 등

여러 시험에 합격하며 공직에 들어섰고,

더 배우기 위해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늦은 나이에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사회복지학과,

그리고 지방자치를 공부하기 위한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늦깎이 공부까지 하느라

고생했다


그렇게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삼십여 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제 예순을 넘겨 퇴직한 지금,칠순을 바라보며

돌이켜보면 고단한 세월이었지만

인생에 큰 후회는 없다.


요즘도 경춘선 ITX를 타고

강촌역을 지나칠 때면

철도가 바뀌기 전의 그 강촌역,

그리고 젊은 날의 나 자신이 떠오른다.


강촌에서 자전거를 빌려 북한강 길을 달리던 기억,

문배마을까지 가서

퇴직동료들과 돼지고기 한 상을 나누던 낮 시간,

그 모든 장면이 다시 살아난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나는 강촌역에 자주 가고 싶어진다.

그곳은 단지 한 역이 아니라

가난했지만 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내 청춘의 정거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꿈은 그곳에 머물러 있다.


내 젊은시절 추억의 강촌역

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향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