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애경사나 꽃을 주문할 일이 생기면
영등포에 있는 ‘지하상가 꽃집’을 찾는다.
큰 간판이 번쩍이는 곳도 아니고
도시의 속도와는 조금 떨어진 자리지만,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시간이 한 박자 느려진다.
꽃을 사기 위해 들렀다가
어느새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인생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 있다.
그 꽃집은 내게
꽃을 사는 곳이기보다
사람을 만나는 곳이고,
하루를 쉬어가는 작은 쉼터다.
은퇴한 뒤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또 생각보다 허전하다.
출근할 곳도, 급히 처리해야 할 일도 없지만
마음이 갈 곳을 찾지 못하는 날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괜히 꽃이
좋아진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꽃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장님은 늘 먼저 인사를 건네신다.
“어이구, 오셨어요.”
그 한마디가 참 따뜻하다.
무슨 일을 하러 왔는지 묻지 않아도,
오늘 기분이 어떤지 캐묻지 않아도
그냥 반겨주는 인사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풀어진다.
꽃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는 이야기,
나이가 들수록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이야기,
젊을 때는 몰랐던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
특별한 말은 없다.
그저 인생을 몇 바퀴 돌아본 사람들이
조용히 나누는 평범한 대화일 뿐이다.
가끔은 커피 한 잔을 내어주신다.
삼십 분이면 족할 줄 알았던 자리가
어느새 한 시간이 된다.
커피가 식어갈수록
말은 천천히 이어지고
생각은 깊어진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서두를 이유도 없다
오늘처럼 날이 유난히 추운 날이면
그 화원 꽃집이 더 생각난다.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하루가 괜히 괜찮아진다.
크게 웃지도, 크게 감동하지도 않지만
마음이 편안해진다.
꽃집을 나서며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이 작은 공간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사장님도 건강하시고,
가게도 무궁한 발전과 번창을 이어가기를
조용히 바라게 된다.
인생이란
결국 이런 장소 하나를
마음속에 담고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언제든 찾아가
따뜻한 말 한마디와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곳.
그것만으로도
은퇴 이후의 하루는
충분히 살아볼 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