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반가운 친구의 전화를 받고 외출 준비를 서두르던 참이었다. 바지를 챙겨 입으려는데, 야속하게도 바지 밑단 실밥이 풀려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냥 모른 척 벨트만 조여 매고 나갈까 싶다가도, 걸음마다 밟힐 밑단이 신경 쓰여 결국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반짇고리를 꺼냈다.
작은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일부터가 예전 같지 않았다. 가느다란 실끝을 침으로 적셔 다독이고, 침침한 눈을 가늘게 뜨며 몇 번을 씨름한 끝에야 겨우 검은 실이 바늘귀를 통과했다. 하지만 진짜 난관은 그다음이었다. 요즘 옷감은 어찌나 두껍고 질긴지, 바늘을 밀어 넣으려 할수록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저릿한 통증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린 손가락을 문지르다 문득, 아주 오래전 시골집 아랫목에서 보았던 풍경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겨울밤, 희미한 전등 아래서 어머니와 할머니는 늘 무언가를 꿰매고 계셨다. 우리 형제들이 구멍을 내온 양말이며, 무릎이 하얗게 닳아버린 내복들이 그분들의 머리맡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때 어머니의 가운뎃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것, 바로 닳고 닳아 반질반질해진 '골무'였다.
그 시절 어린 내 눈에 골무는 그저 딱딱하고 투박한 고무 조각이나 헝겊 뭉치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 두꺼운 바지 천에 바늘을 억지로 밀어 넣으며 깨달았다. 그 작은 골무 한 마디에는 자식들의 해진 옷가지를 고쳐 입히려는 어머니의 고단한 사랑과, 생의 무게를 묵묵히 밀어내던 인내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손가락이 아파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 나도 어머니처럼 골무를 찾아 손가락에 끼웠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힘겨웠던 바늘이 두꺼운 천 사이를 쑥 하고 파고들었다.
불과 3~4분 남짓한 짧은 바느질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어느덧 그때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예전 같으면 아내에게 "이것 좀 해달라"며 건넸을 일이지만, 이제는 스스로 바늘을 든다. 그것은 단순히 귀찮게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바느질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그리고 그 수고로움을 견뎌온 아내와 옛 어른들에 대한 뒤늦은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바느질을 마치고 팽팽해진 밑단을 만져보며, 나는 내 손끝에 남은 골무 자국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평생을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밤마다 골무에 의지해 가족의 일상을 기워냈던 어머니와 할머니. 그분들의 손마디는 얼마나 아팠을까. 이제야 그 아픔을 이해하게 된 못난 아들은, 외출을 위해 문을 나서며 곁에 있는 아내에게도 새삼스러운 고마움을 느낀다.
비록 투박한 솜씨지만 직접 꿰맨 바지를 입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골무 덕분에 무사히 통과한 바늘처럼, 우리네 삶의 고단함도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이라는 '골무' 덕분에 부드럽게 이어져 온 것임을 오늘 바느질 한 땀을 통해 배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