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그리움으로 남는다

by 자봉

창밖으로 몰아치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

나는 오늘 지난 33년의 공직 생활과 내 생의 굽이진 길들을 되돌아보면서 안산자락길을 걷는다

(신설된 목포ㆍ부산긴 남해선)

지나온 세월들

돌아보니 참으로 파란만장하고도 치열했던 시간들이었다.

젊은 시절의 나는 보잘것은 없었지만 마치 거침없이 대지를 밀어붙이며 길을 내는 불도저처럼 앞만 보고

직진했다


남쪽나라 장흥, 상방이 마을

임금 바위가 마을을 굽어살피는 제암산의 웅장한 기세와 용의 머리를 닮아 영험한 용두산의 정기를 받고 자란 덕분인지, 나는 한 치의 후퇴도 없이 강직함과 열정으로 험한 세상을 마주하곤 했다.


눈앞의 장애물은 부수어 길을 내면 그만이었고, 마음의 평온보다는 불같은 서슬로 세상을 이겨내려 했던 오만한 청춘이었다.

그 기백으로 일궈낸 33년 공직의 여정은 내 생의 커다란 긍지였다.


특히 현직 시절, 남들이 기피하던 막중한 인센티브 사업 담당을 네 차례나 자처하며 밤낮없이 매진했던 기억은 지금도 가슴을 뜨겁게 한다. 장흥 사람 특유의 근성으로 매번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포상 사업비와 포상금을 따냈고, 그 보상으로 다녀왔던 세차레의 해외 시찰과 포상 휴가들은 고단했던 공무 수행의 길에서 만난 오아시스였다. 마침내 정년퇴직의 날 ‘녹조근정훈장’은 나의 청춘과 헌신에 대해 국가가 보내준 가장 명예로운 응답이었다.

(억불산과 신설된 남해선 장흥역)


지만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는 화려한 성취 뒤에 날카로운 배신과 상실의 암초를 숨겨두고 있었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나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은 낯선 이의 칼날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고향 조그마한 학교와 동산에서 순수한 꿈을 나누었던 가장 믿었던 초등학교 동창의 배신이었다.


그에게 사기를 당했을 때, 돈보다 더 아팠던 것은 내 영혼의 일부였던 ‘사람에 대한 신뢰’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였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서글픈 세상, 어느 집단들처럼 자기들뿐이고 상대방은 필요 없다고 외치는 삭막한 현실 속에서 나는 한동안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걸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세월이 흐르며 하나둘 내 곁을 떠나간 가족들의 빈자리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님도, 다정했던 고모님도, 그리고 늘 내 편이었던 누나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남동생마저 이제는 저 멀리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혈육이라는 단단한 줄들이 하나씩 끊어질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는 시린 바람이 불었고,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고독에 남몰래 눈시울을 붉힌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녘에 서고 보니, 그토록 뜨거웠던 분노와 원망도 이제는 용두산 솔바람에 씻겨 내려가듯 나지막이 수그러들었다. 예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일에도 이제는 그저 허허로운 웃음을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아마도 삶이 나에게 준 가장 귀한 겸손의 선물이자 성숙의 증거일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더 이루기보다 그저 오늘 하루 건강하게 살아있음에 고개를 숙여 감사할 뿐이다.

내 마음은 여전히 제암산 능선을 내달리던 청년 같지만, 몸은 어느덧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조금만 서둘러도 무릎과 손발에 상처가 남는 처지가 되었다. 이럴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가슴의 훈장이 아니라, 곁에서 오손도손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온기다. 혈육들은 먼저 떠났지만, 그 빈자리를 채워주며 오늘도 카톡 한 통으로 정을 나누는 잊지 못할 친구와 지인들이 있기에 나는 다시 희망을 품는다.

젊었을 땐 가난하고 돈이 없어 아무것이나 닥치는데로 식당에서 일해보고. 청소도 해주면서 그날 일당도 받아보고 추운 날 발을 동동 구르며 24시간씩 잠도 못자고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용역 경비업체에서 경비원도 하면서 험한 세상을 극복해 나갔다


살아가면서 근검 절약하며 저축하면서 스스로 집도 장만하면서 험한 세상을 헤쳐 나왔다

한 많은 세월들 무수하게 보내놓고 이제 와 보니 부딪치는 사소한 인연마다 고마움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이제 남은 여정은 혼자 앞서가기보다 옆 사람의 손을 잡고 탐진강 물줄기처럼 유유히 흘러가려 한다. 33년 공직의 성과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바로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인연들이기 때문이다.

엄동설한의 이 겨울, 차가운 한파가 기세를 부리지만 따뜻한 남쪽 고향 장흥의 햇살을 기억하며 나는 오늘도 안부를 묻는다. 먼저 떠난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남겨진 인연들에게는 따뜻한 온기가 될 수 있도록 살아가려 한다. 지나온 세월의 상처는 덮고, 남은 세월은 우리 서로의 온기로 채워가며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오늘도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선배와 친구와 후배ㆍ좋은 지인들이 있어 그래도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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