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매서운 칼바람이 옷깃을 매섭게 파고드는 정월의 아침이다.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기세를 꺾지 않는 추위 속에 두툼한 외투를 여미며 집을 나섰다. 오늘은 1995년, 혈기 왕성하던 서른 초반의 나이에 뜨거운 열정 하나로 인연을 맺었던 ‘영 3회’ 동료들을 만나는 날이다.
어느덧 2026년 병오년의 새 아침을 맞이하며, 신년 인사와 함께 십수 년 이어온 정기 모임을 위해 인천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겨울 풍경을 보며, 문득 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종점 인천역에 내리니 바로 이곳이 경인선 종착점이라는 이정표가 새겨져 있고 길 건너편에는 차이나타운이다
하늘 위를 쳐다보니 바다 위로 운행한다는 바다열차 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열차를 이용하면 월미도까지 간다고 하는데 시간 많은 은퇴자들이 굳이 비싼 요금을 낼 필요가 없어
인천역에서 45번 버스를 타고 도착한 월미도는 참으로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옛 기억을 헤아려 보니, 큰아이가 제 발로 걷지 못한 두 살 때도 두 팔로 보듬고 다니면서 이곳에 왔던 시절 이후로 무려 35년 만의 방문이다.
까마득한 내 기억 속의 월미도는 어린 자식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들어가던 투박하고 정겨운 횟집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거센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화려한 색채의 놀이기구와 현대적인 조형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렇게 변해버린 풍경 속에서 과거를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 우연히 마주한 표지판 하나가 마음을 붙들었다.
이곳이 바로 6.25 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어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던 유서 깊은 장소라는 기록이었다.
그 시절의 장렬했던 역사를 마주하니,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오늘이 얼마나 큰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지 새삼 숙연해졌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관광지가 되어버린 그곳의 바닷가는 우리 같은 은퇴자들의 소박한 주머니 사정에는 너무나 매정했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조금 더 사람 냄새나고 넉넉한 인심이 살아있는 연안부두로 자리를 옮기기로 뜻을 모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동인천역으로 돌아와 12번 버스로 환승해 도착한 연안부두 어시장. 그곳에 발을 내디뎌서야 비로소 사람 사는 활기와 바다의 비릿한 생동감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겨울철 별미인 기름진 방어회와 쫄깃한 광어회,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얼큰한 매운탕을 상에 올리고 십여 명의 동료와 마주 앉았다.
1990년대 그 시절, 우리는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토요일 출근은 당연한 일상이었고, 일요일에도 급한 업무 호출이 있으면 약속이라도 한 듯 사무실에 모여 머리를 맞대던 공직 생활의 나날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고생의 쓴잔을 나눠 마셨던 동료들이기에, 이제는 굳이 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백발과 깊어진 주름에서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표식지)
수봉공원의 능선을 걷고 자유공원의 노을을 보며 나라 걱정, 가족 걱정을 나누던 그 젊은 날의 우리들이 어느덧 인생의 황혼에 서 있는 것이다.
식사 후 신회장이 쏘는 찻집으로 옮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씩을 손에 쥐니, 잊고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용현동과 주안동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30대 나이를 보내며 곳곳의 골목길을 누비던 소박한 일상들,
어렴풋하지만 가슴 한구석을 뜨겁게 적시는 그 시절의 향수가 커피 향과 섞여 짙게 배어 나왔다.
이제 우리는 모두 정년을 맞이했고 6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의 노년이 되었다. 연금으로 살아가는 소박한 삶이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염려하는 목소리에는 여전히 청년 같은 기개가 남아 있었다. "일이 있으면 80대까지도 거뜬히 현역처럼 살자"는 다짐은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삶을 향한 우리 세대만의 마지막 예의 같은 것이었다.
(월미도의 조형물)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새삼 느낀다. 시간은 정말 날개가 달린 것인지, 35년이라는 강물 같은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렸다. 하지만 그 가파른 세월의 고비마다 이들이 곁에 있었기에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 비록 머리카락은 가늘어지고 눈가는 흐릿해졌어도, 제 발로 걸어 나와 옛 일을 추억하며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우리는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무거운 작별 대신 가벼운 약속을 남겼다. 수도권 지하철이 닿는 가평으로, 팔당으로, 혹은 용문산과 소요산의 맑은 공기를 찾아 어디든 떠나보기로 했다. 인생의 후반기, 남은 길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알차고 건강하게 걷고 싶다. 매서운 정월의 칼바람도 우리들의 뜨거운 우정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겨울날이다
(한국철도 탄생역인 인천역)
인생이란. 어떠한 인생도 어떠한 삶도 조용하게
흘러가는 일은 없는것 같다
친구들이나 이웃 친척들을 보더라도 서로 부딪혀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독일의 디트리히 본희터는 인생은 가만이 있지않고
항상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인생후반기 삶이 평탄하거나 순탄하지 않더라도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면서 이웃끼리 지인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고 우정을 나누면서 살아가리라
오늘 모인 30년 동안 우정을 쌓았던 영삼회 모임처럼
웃고 즐겁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