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퇴직 선배와 함께 한강 버스에 몸을 싣고 마곡나루로 향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흐르는 강물을 보며 은퇴 후의 삶을 달래는 중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문자와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한강 근처에 사는 친구 넷이서 점심이나 한 끼 하자는 제안이었다.
내게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정해 달라는 말에 고민이 시작되었다. 종로구 익선동의 고풍스러운 골목일까, 마포의 활기찬 거리일까. 결국 서로 오가기 편한 영등포역 뒤편, 서너 차 레 가 보았던 낙지 요리 집으로 낙점했다.
그것이 오늘 내 마음을 이토록 할퀴고 지나갈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오늘 낮 12시 30분, 영등포역 2층 지상 대합실에서 만난 동창 넷은 역 뒤편 계단을 내려가 낙지 집으로 향했다. 마침 이벤트 기간이라 만 원짜리 낙지 정식을 8천 원에 판다고 했다. 각자 앞에 놓인 미역국과 낙지 한 접시, 싱싱한 상추와 콩나물이 담긴 비빔 그릇이 정갈했다.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으니 장소를 정한 나로서는 내심 뿌듯한 마음도 있었다.
문제는 식사 후였다. 공사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지금은 일이 없어 쉬고 있다는 친구가 기분 좋게 3만 2천 원을 계산했고, 우리는 인근의 호젓한 지하 커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점심값은 다른 친구가 계산했으니 커피값은 내가 계산하기 위해 2만 원을
선결재산후 친구들이 원하는 호박 주스 세잔과 아메리카노를 대접하며 훈훈한 대화가 이어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어제 점심을 제안했던 30억 가량의 아파트에서
잘 사는 그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비수와 같았다.
“인생 퇴직까지 했으면서, 고작 8천 원짜리 점심으로 때우고 사느냐.”
비아냥거리는 그 목소리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8천 원, 아니 1만 원짜리 밥이면 어떠한가!.
배부르게 먹고 좋은 사람들과 마주 앉았으면 족한 것을, 그는 내 인생 전체를 그 밥값의 액수로 재단하려 들었다.
화가 머리까지 치밀었지만 서로 좋은 게 좋아 화를 내지 않고 꾹 참으면서 내 지나온 길을 나직이 읊조렸다.
나는 형도 누나도 없이, 그저 홀로 서야 했던 장남이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누님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용돈 한 푼 쥐여줄 형님이나 누나가 있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학창 시절 석간신문 배달을 하며 사기꾼 같은 보급소장을 만나 넉 달치 배달료도 못 받은 채 빈손으로 돌아섰던 그 시절의 고난과 고통ㆍ슬픔ㆍ서러움이 지금도 뼈에 사무친다.
돈이 없으면 의지할 곳도, 힘도 없다는 것을 몸으로 너무 일찍 배운 나는 ‘근면’과 ‘성실’을 생활신조처럼 몸에 새기며 살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돈을 쓰지 못하는 것은 인색함이 아니라, 내 삶을 지켜온 최소한의 예의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배고픔의 무게를 모르는 그 친구는 알 리가 없을 것이다. 은퇴 후 연금으로 살아가는 처지에 10만 원이든 20만 원이든 공평하게 나누어 내는 퇴직자 모임의 ‘N분의 1’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편안한 배려인지를 그는 모른다
동창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아무나 “돈 있는 사람이 내면 되지”라며 타인의 주머니를 당연하게 여기고, 공무원 연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들의 무례함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를 말이다.
오늘 내가 낸 커피값은 8천 원짜리 낙지볶음보다 저렴한
5천 원짜리 호박 주스이지만 , 내 마음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이제 우리 나이가 70세에 가까워졌고 앞으로는 도움의 손길은 줄어들 것이고, 내 노후를 지켜줄 것은 결국 내가 아끼고 모은 이 소중한 자산들뿐이다.
그 동창은 내가 이제 살 만큼 살고 연금도 받으니 비싼 것을 사 먹어야 몸에 좋다며, 마치 나를 걱정해 주는 듯한 말투로 비아냥을 이어갔다.
연금은 받아 뭐 하냐고 묻길래 연금은 현직으로 근무할 때 외벌이 었기에 나. 홀로 나오는 연금은
아내에게 생활비로 다 준다고 말했더니 비자금은 없느냐고 물어왔다
그 친구는 공장장과 이사까지 하면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 법인카드로 골프와 접대도 하면서 원 없이
직장생활을 행복하게 누렸던 것 같다
국립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체에서 최고위직까지 올라갔으면 좋은 것 비싼 것만 먹다가 은퇴 이후. 잘 살고
있다면 서민들의 애환을 모르고 살고 있을 수도 있다
항상 사람은 내 눈높이에서 상대방을 바라보지 말고
상대방의 눈높이도 이해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동창회 모임에 참석해 보면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고 쉽게들 말한다
내가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먼저 열고 음식을 살 것이
아니면 음식값이 비싸다느니 저렴하다 느니 그런
이야기도 하지 말고 그냥 맛있게 잘 먹었다고 표현만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한 그릇 남김없이 뚝딱 비웠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하다 왜 싼 것을 먹었냐면서. 비아냥거리는 표현은
상대방들에게. 불쾌감을 준다
친구가 내뱉은 그 속내에 담긴 가벼움이 나를 더 서운하게 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부유한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편하게 공부하고 자란 그가, 대학에 진학해 4년 동안 편안하게 공부할 때 나는 가난한 농촌 외딴곳에서 밥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학교에서는 자주
점심시간마다 수돗가로 달려가 허기를 달래야 했던 그 참담한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더욱이 인생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나이에 대화의 주제를 이상한 가십이나 여자 이야기로 돌리는 동창들의 모습은 생경하기까지 하다. 은퇴 후의 삶은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고 서로의 고생을 보듬는 시간이 되어야 하거늘, 그들은 여전히 타인의 삶을 숫자로 재단하고 무례를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오늘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결심 하나가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는다. 자존심을 깎아 먹으면서까지 이제는 불편한 만남을 고집하지 않으리라.
가끔, 아주 가끔씩만 얼굴을 보며 내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아끼는 길임을 깨닫는다.
8천 원의 식사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타인이 치열하게 일궈온 삶의 인생을 존중하지 못하는 그 얄팍한 마음이 진정 부끄러운 것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
나의 8천 원은 누군가의 비싼 성찬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숭고한 생의 결정체였음을,
은퇴 이후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연금과 조금 저축해
놓은 돈을 사용하다 보니 친구들을 만나 1인당 15000원이나 2만 윈짜리 삼계탕이라도 먹으려면
사실 부담스럽다
상대방이 쉽게 지갑을 열겠도 아니고 서로 눈치만
보는 자리에 가끔씩 참석하게 되면 누군가가 먼저
오늘 식대는 서로 부담해 나누어 계산하자는 제안이
가장 듣기. 좋다
그런데 학교 동창들을 민나면 쉽게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아 때로는 불편한 자리다
은퇴자 자리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지갑을 열어 나누어
계산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자주 만나게 되는데
학교 동창들과 함께했던 점심식사자리가 가격이 저렴한 낙지때문에 비아냥거리는 언어로 들렸지만 그 친구는 나쁜의도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리라 고
이해를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오늘도 서산으로 져물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집으로 발길을 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