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의 무게와 12조원의 그림자

by 자봉


60세까지 35년, 한 직장에서 청춘을 다 바치고 은퇴를 맞이했을 때 나는 비로소 짐을 내려놓는 줄 알았다.


하지만 쉬는 것도 일하는 것만큼이나 고된 일이었다. 운 좋게 찾은 단기 일자리를 시작으로, 정규직은 아니어도 60대 이후 여섯 군데의 직장을 거치다 보니 어느덧 70대 문턱에 서 있게 되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60대 중반에 감당했던 야간 심야 새벽1시까지 여성들이나 학생들을 안전하게 집에까지 함께 동행해서 집까지 안전하게 보내드리는 안심귀가 써비스요원 업무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 5일을 밤10시 부터 밤1시까지

도로와 역주변을 순찰하면서 범죄예방과 취약한 사람들을 귀가시켜주는 일을 했다. 매월 손에 쥐는 90만 원은 젊은 시절의 월급에 비하면 소소했지만, 무료함을 달래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귀한 땀의 결실이었다.


65세 이전, 고용보험 의무 가입 대상자로서 계약이 종료된 후 처음으로 6개월간 실업급여를 받아보았다. 밤새 일하며 벌던 90만 원이 일하지 않는 기간에도 통장에 찍히는 것을 보며, 참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이 가슴 한구석을 찔렀다.

내가 느낀 그 묘한 기분은 바로 우리 사회가 마주한 거대한 모순의 그림자였다.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지난해 실업급여 지급액 12조 2,800여억 원, 역대 최대치.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 때보다 더 많은 돈이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의 고용 시장이 재난 수준에 이르렀음을 증명한다.


구직자 10명이 단 4개의 일자리를 놓고 다투는 척박한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갈 곳을 잃고 "그냥 쉬었다"며 입을 닫는다.

정부가 노인 일자리를 늘려 지표를 채우고는 있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진정한 경제의 심장인 민간 기업들은 투자 활력을 잃고 해외로 눈을 돌린다. 노동 생산성은 OECD 최하위권을 맴도는데, 노동법을 둘러싼 갈등은 평행선을 달린다.


일하고 싶은 청년은 갈 곳이 없고, 고용해야 할 기업은 기운이 없는 이 비극적인 엇박자가 대한민국 고용 시장의 현주소같다

지하철을 타보면 네명중 한명이 65세 이상 노인들이니

어디를 가나 노인들의 전성기인것 같다


이 혼란을 틈타 우리 사회에는 '실업급여의 굴레'라는 기묘한 구조가 뿌리를 내렸다. 내가 경험한 실업급여는 평생을 일해온 사람에게 주는 잠시의 휴식 같은 것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전략적인 수입원'이 되어버렸다.


잠시 일하고 요건만 채워 다시 실업급여를 받는 '반복 수급'의 문제다.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과 연동되다 보니, 땀 흘려 일한 월급보다 실업급여가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고용보험기금은 결국 우리가 낸 보험료와 세금으로 지탱되는 공공의 자산이다. 이것이 '재취업을 위한 징검다리'가 아닌 '당연히 챙겨야 할 덤'으로 전락하는 순간, 성실하게 일터를 지키는 수많은 노동자의 의욕은 꺾이고 만다.


짧게 일하고 자주 실업급여를 받는 이 기형적인 구조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


부정 수급과 반복 수급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히 돈 아끼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정함과 시스템의 존립을 위함이다.

기업은 다시 국내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활력을 되찾아야 하고, 정부와 국회는 단순히 퍼주기식이 아닌 근본적인 제도 수술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몇 달간의 실업급여가 아니라, 35년 전 내가 가졌던 것 같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단단한 직장'이다.

12조 원이 넘는 실업급여의 무게는 우리 사회가 짊어진 불확실성의 무게다.


이제는 그 막대한 재원이 '실업을 지탱하는 비용'이 아니라 '고용을 창출하는 마중물'로 쓰여야 한다. 심야의 찬 공기를 가르며 일터로 향했던 내 노년의 땀방울이, 일하지 않아도 받는 돈의 가치보다 결코 가볍게 여겨지지 않는 세상을 간절히 바라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