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며 때로 의도치 않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자녀들과의 약속을 깜빡 잊어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 부모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반복되는 거짓말이 좋은 것은 아니겠으나, 스트레스 가득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때로는 그 작은 거짓말이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함을 느낀다.
외벌이로 직장 생활을 하는 남자 가장들의 처지는 대개 비슷할 것이다. 쥐꼬리만한 봉급은 매월 통장으로 흔적만 남기고 스쳐 지나가니, 구경조차 못한 채 늘 용돈 부족에 시달린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은퇴이후 아내에게 한 달 용돈으로 30만 원을 받지만, 교통비와 점심값, 커피 몇 잔이면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별도의 큰 수입이 생기는 것은 아니나 가끔씩 심의위원이나 안전 모니터 위원 등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활동비를 조금씩 받고 있다ㆍ
아내는 내 연금으로 빠듯한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가지만, 남들처럼 넉넉한 생활을 하기엔 늘 무리가 있다.
아이들은 어느덧 성장해 일찍 취업해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공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각자의 길을 걷고 있으니 자녀들에게 고맙다
이제 어느덧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퇴직한 지도 어언 10여년이 되어간다.
은퇴이후 이제는 힘 빠진 가장이라 자조 섞인 말을 내뱉기도 하지만, 어르신 일자리나 단기 계약직 자리가 생기면 여기저기 재빠르게 입사원서를 내밀어 본다.
지난해 까지만 하더라도 한 달에 열 번 정도 출근해 용돈을 긴요하게 벌어 썼지만, 늘 부족함은 가시지 않는다.
다행히 퇴직 전, 직장 생활을 할 때 면접관과 회의수당 등 타 가관으로 출장나가 받은 수당으로 틈틈이 비자금을 챙겨두었던 것이 큰 위안이 된다.
이렇게 수십년동안 아내 몰래 모은 2,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모았다.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받기 위해 제2금융권에 예치해두고 불려 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퇴직 전에는 직장에서 구내식당을 이용하니 밥값 걱정이 없었지만, 퇴직 후 거의 '백수'가 되고 보니 지인들을 만날 때 발생하는 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도서관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가끔 퇴직자들을 만나면 서로 음식값이나 술값에 눈치를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이 비자금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돌이켜보면 30년 직장 생활 동안 아내 몰래 2천만원을
모아 일부금액을 건넸을 때, 너무나 행복해 하던 아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남자들은 직장 생활을 할 때 반드시 아내 몰래 비자금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삶의 지수와 행복도를 높여주는 비결임을 말이다.
비록 재직 시절, 아내에게 도서관에 공부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도 있지만, 퇴직 후 아내에게 손 벌리지 않고 당당하게 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정치인이나 사기꾼들의 상습적인 거짓말에 눈살을 찌푸리곤 한다. 그런 나쁜 거짓말은 당연히 사라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남몰래 좋은 일을 위해, 혹은 소중한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모은 비자금을 사용하는 이런 '참된 거짓말'만큼은 우리네 삶 속에 조금 더 많아져도 행복한 일이 아닐련지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