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by 자봉

시골의 투박한 정취 속에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자기 속에 교과서를 주섬주섬 담아 어깨에 메고 걷던 십 리 길. 인적 없는 고갯길과 으스스한 공동묘지 사이를 지날 때면 어린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지만, 50년대생인 우리에게 그 길은 피할 수 없는 성장의 통로였다.


'보릿고개'라는 이름의 척박한 세월을 몸소 견디며, 우리는 밤을 꼬박 새워 공부하고 부지런히 육체노동을 하며 '밥을 굶지 않는 시대'를 일구어 왔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손을 뗀 지도 어느덧 8년째다.

세월은 시속 60km의 속도로 인생 가도를 달려 어느덧 나를 60대 후반의 언덕에 데려다 놓았다.


몇 년 전, 몸이 허물어지며 의식을 잃고 두 번이나 쓰러졌던 기억은 지금도 아찔하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 염라대왕이 "너는 아직 할 일이 많으니 지금 오면 안 된다"며 돌려보낸 것만 같았다. 운 좋게 119 구급차에 실려 가 기적적으로 회복한 뒤, 나는 덤으로 얻은 이 '두 번째 인생'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다행히 연금을 받으며 기본적인 생활은 영유하고 있지만, 무기력한 권태에 빠지는 것만큼은 경계하고 싶었다. 신문과 책을 가까이하며 평생 학습의 습관을 찾고, 50플러스 센터를 드나들며 새로운 교육을 받는 일은 나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다시 사회로 나가려는 길목에서 마주한 현실은 차갑기만 했다.

구인 사이트를 뒤져보아도 60세가 넘은 이에게 허락된 자리는 청소나 경비원 같은 단순 직종뿐이었다. 고령화 시대라고는 하지만, 숙련된 노하우를 가진 이들에게 사회가 내미는 손길은 턱없이 부족했다. 10여 군데에 이력서를 던지고 간신히 서류 전형을 통과해 면접장에 들어섰을 때,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비애를 맛보았다.



나보다 한참 어린 면접관이 다리를 꼬고 앉거나, 소위 '쩍벌' 자세로 앉아 다리를 건들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세 지긋한 지원자에게 질문을 던지면서도 은근히 인격을 무시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 앞에서 내 마음은 한없이 비굴해지는 것만 같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간부급으로 일하며 면접관의 자리에 서던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는 늘 스스로를 경계했다.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혹여나 내 태도가 오만하거나 불손하게 비칠까 봐, 면접장 문을 열기 전 복장을 한 번 더 살피고 질문 하나에도 배려를 담으려 애썼다. 그러나 이제 '을'의 처지가 되어 마주한 면접장은 '역지사지'를 잊은 오만의 현장이었다. 사회복지사와 자살 예방 활동가 자격증을 따며 보람된 제2의 인생을 꿈꿨지만, 월 70~80만 원의 보수를 받는 자리조차 얻기 힘든 이 재취업의 벽 앞에서 나는 매번 실감한다.

이제 나는 또래의 퇴직자들과 함께 농촌의 빈집을 얻어 고추와 참깨를 심는 소박한 꿈을 꾼다.


비록 낙방의 쓴잔을 마실지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여정을 통해 나는 인생의 가장 큰 덕목 하나를 다시금 몸소 배운다. 그것은 바로 '겸손'이다.

남녀노소 누구를 막론하고, 면접이나 시험에 응시하는 모든 이들은 각자의 삶을 걸고 도전하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할 줄 아는 마음, 그리고 자신을 낮추어 상대를 존중하는 겸손의 미덕. 이것이야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단단한 무기이자 아름다운 예우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화려한 직위는 아니었더라도 겸손이라는 이름의 새 신을 신고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세상과 마주할 준비를 한다.


굽이진 길 끝에서 얻은 이 깨달음이 나의 남은 생을 환하게 비추어 주리라 믿으면서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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