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참견과 잔소리

by 자봉

창밖의 계절은 아직도 춥다

집 안의 공기는 어쩐지 갈수록 무겁고 뻑뻑하게만 느껴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귀를 열고, 타인의 지혜를 너그럽게 수용하며 완숙해지는 과정이라 믿어왔건만, 정작 가장 가까운 아내의 목소리는 갈수록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내 마음의 고요를 깨뜨린다ㆍ


어느덧 환갑을 넘긴 아내의 목소리에는 예전의 나긋나긋함 대신, 일상의 소소한 참견과 쉼 없는 잔소리가 가득 들어차 있다. 거실을 가로지르는 그 굵고 거친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반복적으로 터져 나오는 높은 톤의 지적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귀를 열고 살아야 한다"는 내 삶의 철학은 아내의 잔소리 앞에서 무력해지고, 그 소음으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문득 책상 앞에 놓인 글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인생은 이렇게 사는 게 최고다' 라는 말 뒤로 이어지는 여러 가지의 가르침들.


어쩌면 내가 지금 느끼는 스트레스는 아내의 목소리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목소리에 일일이 반응하고 흔들리는 내 안의 '민감함'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내 마음대로 살라는 첫 번째 조언은, 비단 타인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의 시선으로부터도 어느 정도는 의연해지라는 뜻일 것이다 아내의 목소리를 나를 향한 공격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그저 공기를 타고 흐르는 '사운드'로 치부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내는 그저 자신의 불안을 쏟아내는 것일 뿐, 그것이 내 존재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리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라는 말처럼, 아내의 잔소리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처럼 단순화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ㆍ


완벽해지려 애쓰지 말고 편하게 살라는 조언은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아내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다 보니 숨이 가빠지고, 그 기대에 못 미쳐 쏟아지는 지적에 상처받는 것이다.


"그래, 나는 이 정도로 충분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내 속도대로 걷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내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잠시 눈을 감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밖에서 들려오는 거친 파도 소리에 배가 흔들릴 수는 있어도, 배 안에 물이 차오르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내 마음이라는 배의 키는 결국 내가 잡고 있어야 한다.


이제 인생의 후반전, 70대를 향해 가는 길목에서 나는 나만의 '섬'을 찾아 떠나보려 한다.


그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다시 아내를 사랑하기 위한 거룩한 거리두기이다.


때로는 강물이 말없이 흐르는 양평의 두물머리를 걸으며 내 마음의 찌꺼기를 흘려보내고, 때로는 고요한 성곽길을 걸으며 침묵의 가치를 되새길 것이다.


홀로 떠나는 여행 속에서 나는 비로소 누군가의 남편이나 가장이 아닌, 오롯한 '나'로서의 평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잘 산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수많은 소음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아내의 굵은 목소리조차 삶의 한 배경음악으로 치부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빈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배워야 할 가장 큰 공부이다.

조금 더 무심해지고, 조금 더 단순해 져야 겠다.

귀를 열어 세상을 보되, 내 평화를 해치는 소리에는 마음의 빗장을 적절히 거는 지혜를 발휘해 보려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내가 지켜야 할 '내 사람'인 아내의 진심도, 그 날카로운 목소리 너머에 숨겨진 외로움도 언젠가는 온전히 들릴 날이 올 테니까.


소음이 닫혀야 비로소 들리는 내면의 평화를 찾아, 나는 오늘도 나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리라.


힘들면 힘든데로

쉬우면 쉬운데로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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