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소와 목욕
ㅡ 가문의 보물, 황소라는. 이름의 식구
오늘날의 농촌은 거대한 기계 소리로 가득하지만, 내가 나고 자란 50년 전의 시골 마을은 살아있는 생명의 숨소리가 곧 농사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 시절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우리 집의 가장 큰 재산 목록 1호는 단연 황소 한 마리였다. 사람들은 소가 머무는 곳을 외양간이라 불렀으나, 우리 일곱 남매에게 그곳은 ‘곡간’이자 ‘금고’였고, 때로는 우리보다 더 극진한 대접을 받는 상전의 방이기도 했다.
황소는 단순히 덩치 큰 가축이 아니었다.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묵묵한 가장이었고, 일곱 자식의 학비를 만들어내고 명절날 고무신 한 켤레를 사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들에 나가 싱싱한 풀을 베어다가 작두로 썰어 여물을 만드셨다. 농사가 끝나면 볏짚을 가지런히 말려 소가 잠을 자는 바닥에 두툼하게 깔아주셨다. 그 푹신한 짚더미 위에서 소가 큰 눈을 끔벅이며 되새김질을 할 때면, 집안 전체에 안도감이 감돌았다. 소가 편안해야 우리 집의 일 년이 편안하다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ㅡ겨울의 시련과 외양간의 사투
겨울은 시골 사람들에게나 짐승에게나 가혹한 계절이었다. 영하의 추위가 뼈를 파고들고 고드름이 처마 끝에 무겁게 매달릴 때면, 아버지는 당신 몸보다 소의 안위를 먼저 살피셨다.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새어 들까 봐 볏짚과 진흙을 덧발라 벽을 청정하게 둘러치고, 소의 등 위에는 낡은 옷가지와 가마니를 겹겹이 올려 든든한 ‘겉옷’을 입혀주셨다.
그 시절의 겨울은 유독 길고 매서웠다. 입동이 지나고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외양간은 마치 성채처럼 굳게 닫혔다.
그 안에서 소가 내뿜는 하얀 입김은 외양간 내부의 온도를 조금이나마 높여주는 난로 역할을 했다.
우리 남매들은 그 추위 속에서도 외양간 문을 열어보며 소가 잘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소의 커다란 몸에서 나오는 미지근한 온기는 가난한 집안을 지탱하는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았다.
ㅡ 찬 바람 치던 외양간에서의 명절맞이 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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