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세 살의 봄날

1992년

by 자봉

세월은 흘러가는 물과

같다더니, 먼지 쌓인 낡은 앨범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진 한 장이 33년이라는 시간을 단숨에 건너뛰게 한다.

사진 속 나는 서른세 살.

인생에서 가장 푸르던 시절의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영등포 3동 사무소.

1992년 1월, 그곳으로 첫 발령을 받으며 시작된 나의 공직 생활은 마치 갓 구워낸 빵처럼 따끈하고 의욕이 넘쳤다.

그때의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당당했고, 어깨에 얹힌 업무의 무게감을 다 극복할 것처럼 여기던 청년이었다.


당시 동사무소의 풍경은 지금의 행정복지센터와는 결이 많이 달랐다. 토요일에도 오전 근무를 하던 주 6일제의 시대. 우리는 늘 일손이 부족했고, 덕분에 나는 새마을, 통계, 문화체육, 반상회 담당까지 1인 다역을 수행하며 참으로 많은 일을 해냈다.

‘새마을 운동과 국토대청결운동’이 선포되면 이른 아침부터 빗자루를 들고 영등포의 비좁은 골목을 누볐다.


캠페인이 있는 날이면 빳빳한 광목 어깨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섰다. 주말이면 동네를 청소하고 ‘바르게 살기 위원회’ 위원들과 땀방울을 섞으며 막걸리 한 잔에 피로를 씻어내던 기억이 선하다. 몸은 고됐지만, 내 손길이 닿는 곳마다 동네가 깨끗해지고 질서가 잡혀가는 것을 보며 느끼던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의 활력소였다.


사진 속 이 날은 아마도 가을의 정취가 물씬했던 ‘체련대회’ 날이었을 것이다. 토요일 오전 업무를 서둘러 마친 행정팀과 민원. 공과금팀 직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도봉산 입구로 모여들었다.

당시 박도치 동장님을 필두로 우리 동료들은 제 몸집만 한 배낭을 하나씩 짊어졌다. 그 안에는 신문지에 겹겹이 쌓인 생고기와 갓 딴 상추, 마늘과 쌈장이 가득했다.

가파른 바위 너덜길을 오르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면, 누군가 뒤에서 등을 밀어주고 누군가는 앞바퀴를 끌어주듯 손을 내밀었다. 산등성이에 자리를 잡고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면, 지글거리는 고기 굽는 소리와 함께 산들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갓 씻어온 상추에 두툼한 고기 한 점 얹어 서로의 입에 넣어주던 그 살가운 정은, 효율과 개인주의를 앞세우는 요즘의 직장 문화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소중한 풍경이었다.


그날 우리가 마신 것은 술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와 끈끈한 동료애였다.

사진 속 인물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본다. 구로구에서 멋지게 퇴직했다는 소식을 건너 들었던 신 사무관, 늘 그림자처럼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던 조 사무관, 그리고 당시 민원주임님

으로 불리던 유사무관. 민방위 담당이었던 김 사무관님까지. 그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우리를 호령하시던 박 동장님.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라, 지금쯤 아흔을 훌쩍 넘기셨을 동장님과 제각기 다른 곳에서 노년을 맞이하고 있을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그때 우리는 참으로 건강했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도봉산의 가파른 선인봉 앞에서도 지칠 줄 몰랐던 서른세 살의 나는,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기력도 예전 같지 않다.


거울 속에는 희끗한 머리칼을 가진 노인이 서 있지만, 사진 속 동료들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볼 때면 마음만은 다시 33년 전 영등포 3동 사무소의 낡은 책상 앞으로 돌아간다.

10월의 가을바람은 무정하게도 계절을 밀어내며 겨울을 재촉한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가지만, 추억은 사라지지 않고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속에 켜켜이 퇴적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색 바랜 낡은 사진 한 장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내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일하고 가장 순수하게 사람을 사랑했던 시절의 거룩한 기록이다.

함께 땀 흘렸던 그분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박도치 동장님은 여전히 강건하신지, 신우진 사무관과 동료들은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평안한 저녁을 맞이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밤이다.


비록 몸은 멀어져 다시 한자리에 모일 기약은 없더라도, 저 도봉산의 단단한 바위처럼 우리의 기억만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소망해 본다.

나쁜 추억이든 좋은 추억이든, 시간이 지나 발효되면 모두가 눈물겨운 그리움이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서른세 살의 내가 도봉산 정상에서 온몸으로 맞았던 그 시원한 바람이, 오늘 나른한 오후의 창가를 타고 다시 불어오는 것만 같다. 나는 조심스레 앨범을 덮으며, 멀리 도봉산 쪽 하늘을 향해 소리 없는 안부를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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