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살을 깎으며 마주하는 계절

늙어 간다는 것은

by 자봉

40년. 강산이 네 번 변한다는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매일 아침 같은 길을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향했다.


가족의 생계를 어깨에 메고, 때로는 굴욕을 견디고 때로는 성취에 웃으며 버텨온 시간이었다.


퇴직 후 내게 남은 것은 텅 빈 책상이 아니라, 몸 구석구석에 박힌 세월의 흔적들이다.

요즘 나의 유일한 낙은 동네 사우나를 찾는 일이다. 1만 1천 원이면 소금방과 핀란드식 사우나를 오가며 온몸의 독소를 빼낼 수 있다. 일주일 혹은 열흘에 한 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마디마디가 굳어질 때쯤 그곳에 간다.


서너 시간 동안 뜨거운 열기 속에 몸을 맡기고 땀을 쏟아내면, 뻣뻣했던 근육들이 비로소 유연해진다.


사우나 문을 나설 때 느껴지는 그 부드러움은, 40년 직장 생활이 내게 준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보상이다.


하지만 사우나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서면, 세월이 매겨놓은 정직한 성적표와 마주하게 된다.

눈은 침침해져 이제 안약과 영양제 없이는 세상이 흐릿하다. 발바닥과 발가락에는 왜 이리 굵은 살이 자주 박히는지.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손톱 밑살과 발 뒤꿈치를 수시로 다듬고 정리해야 한다.

머리카락은 또 어떤가. 희끗희끗함을 넘어 이제는 숭숭 빠져버린 자리에 가발을 얹어야만 외출 채비가 끝난다.


하나를 고치면 다른 하나가 고장 나는 노후된 기계처럼, 내 몸도 여기저기 손볼 곳 투성이다.


췌장에 큰 낭종이 생겼다는 소식은 가슴 한구석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나이 먹는 게 참 새롭고도 불편하다"는 혼잣말이 절로 나오지만, 이것 또한 내가 받아들여야 할 나의 현실임을 안다.



지하철을 타면 가끔 마음이 슬퍼질 때가 있다. 희끗한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작은 가방 하나 멘 채 목적지 없이 앉아 있거나 서서 창밖을 멍하니 응시하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나의 내일을 본다.


나는 결심한다. 저렇게는 살지 않겠다고.

그래서 나는 가발을 두 개나 장만하고, 항상 검정 운동화를 깨끗하게 닦아 신는다.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며 몸에서 날 수 있는 노인 냄새를 지우려 애쓴다.


아내는 매일같이 "뭐 그리 유난이냐"며 잔소리를 해대지만, 이것은 나 자신을 향한 마지막 자존심이자 품위 유지다. 거울 속의 내가 단정해야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도 생기는 법이니까. 가끔은 이 관리가 머리 아프고 고단하지만,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순간 세월에 잡아먹힐 것 같아 멈출 수가 없다.



마음이 지칠 때면 시골 고향 마을을 떠올린다.

어머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은퇴 후 낙향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을 것이다.


마당 한편에 차를 마시는 공간을 만들고, 책도 보고 소일거리로 텃밭도 가꾸며 지혜롭게 늙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으셨고, 고향 집은 이제 한두 가구만 남은 쓸쓸한 산골짜기가 되었다. 막상 가려니 적적함과 무서움이 앞선다.


결국 인생은 혼자 가는 길이다.

어머님이 떠나신 지도 오래되었고, 이제는 내가 그 어머님의 나이가 되어 안약을 넣고 발바닥 굳은살을 깎는다.

세상은 참 빨리도 간다.

40년 직장 생활을 마친 뒤 찾아온 이 여유가 때로는 버겁고 슬프지만, 나는 오늘도 깨끗이 닦은 운동화 끈을 조여 맨다.


비록 몸은 여기저기 고장 나고 고칠 곳은 많지만, 정성껏 나를 가꾸며 남은 생을 단정하게 걸어가고 싶다.


굳은살을 깎아내듯, 마음의 슬픔도 조금씩 깎아내며 그렇게 오늘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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