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만 가는 병원의 시간

by 자봉

출장길이었다.

직장의 명패를 달고 서둘러 움직이던 평범한 하루였다.

출장지인 서초동의 큰 건물 입구의 회전문을 급히 통과하려던 순간, 반대편에서 신체건강한 남성이 회전문을 확 밀어버려 갑자기 손끝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문이 밀리며 손가락 마디가

바닥에 떨어졌다

짧은 찰나였지만 그 순간 죽는 줄 알았다. 통증보다 먼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왔다.

손가락을 보니 피는 엄청나게 나와 순간적으로 손수건을 꺼내 절단된 손마디를 반대손으로 무의식적으로 꽉 누르고

소방서에서 119 엠블란스가

요란스럽게 사이렌을 울리면서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주변이 술렁였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침착했다. 119에 전화를 걸도록 부탁하고 떨어진 손가락 일부 마디를 구급요원들이

집게로 주워 얼음통에 보관해 봉합수술이 가능한

강남의 전문병원에 인계되어

4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다


봉합수술을 받은 후 서로 살이 붙게 하기 위해 의료용 거머리가 여러 마리 동원되었고 꽃 피는 봄날 40일 이상을 병실에서 보냈다


병원의 시간은 바깥세상과 다르게 흐른다.

창밖에서는 봄꽃이 피어났다가 지고 있었지만, 병실 안의 하루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침 회진, 점심 식사, 저녁 소등.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하루가 반복되었다. 입원할 때 막 피기 시작하던 꽃들이, 퇴원할 무렵에는 이미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계절은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나는 병상 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40일은 무척 길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답답함이 더 힘들었다. 자유롭게 걷지 못하고, 내 뜻대로 문밖을 나설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큰 제약일 줄 몰랐다.


인간은 공간에 의해 얼마나 쉽게 제한되는 존재인가. 병원은 생명을 지켜주는 곳이지만, 동시에 자유를 잠시 거두어 가는 곳이기도 했다.

퇴원 후에도 두 번이나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서울의 대형 대학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으며 1박 2일을 보내기도 했다. 기계에 몸을 맡긴 채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또 다른 시험이었다. 원인을 찾기 위한 검사였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몸이 더 이상 젊은 날의 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평생 병원에 입원해 지낸 날을 합치면 40일을 훌쩍 넘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병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 한쪽이 먼저 지친다.

그렇지만 병원에서의 기억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어머니도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치셨다.

병원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퇴원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세던 시간들. 결국 요양원으로 옮기셔서 또 다른 긴 시간을 보내셨다. 제약된 공간에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어머니는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그 눈빛 속에서 자유를 향한 간절함을 읽었다.


누나의 딸이었던 조카 또한 서울의 큰 병원에서 오랜 세월 백혈병 치료를 받았다.

혈관이 좋지 않아 반복되는 검사와 수술을 견뎌야 했다. 보호자들은 병실 바닥에서 쪽잠을 자고, 환자는 좁은 공간 안에서 계절을 몇 번이나 맞았다. 병원은 환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시간을 묶어 두는 곳이었다. 누구나 같은 소망을 품는다. “빨리 나아야 한다.” “빨리 퇴원해야 한다.” 퇴원은 단순한 퇴실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통과의례였다.

나는 병실에서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건강은 있을 때는 당연하고, 잃고 나서야 절실해진다는 말이 왜 진리인지 알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 자유롭지 못한 채 지내다 보니, 평소 무심히 해오던 작은 움직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젓가락을 잡는 일, 단추를 채우는 일, 문을 여는 일.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해오던 일상이 실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퇴원하던 날, 병원 문을 나서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햇빛이 눈부셨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시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건강은 한 번 다쳤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후에도 몸은 여러 신호를 보냈다. 쓰러짐과 회복, 검사와 결과. 그 과정을 겪으며 나는 깨달았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돈도 명예도 결국 건강 위에 서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찾아오고, 아무리 노력해도 병은 스며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다. 건강할 때 지키지 않으면, 잃고 나서 후회한다는 것.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병원의 40일은 내게 긴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자유의 의미를 배웠고, 건강의 무게를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도 다짐한다. 가능한 한 병원 문턱을 다시 넘지 않도록, 내 몸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살아 있다는 것, 스스로 걸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함을 느낀다

또한, 의로진과 소방서 119구급대원님에게도

평생동안 고마움과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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