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설날이 다가오면 마음 한구석이 먼저 따뜻해진다.
어린 시절의 풍경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마트가 즐비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우리 고향에서는 5일에 한 번씩 장이 섰다.
설이 가까워지면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 그 5일장을 찾았다. 흙먼지 날리는 장터 길을 걸으며 가슴이 괜히 설렜다.
검정고무신에 다우다 바지를 입고, 상의 하나 단정히 걸친 채 부모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새 옷은 아무 때나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어야 겨우 한 벌 마련되었다. 그것도 늘 새것은 아니었다.
동네 형이나 친척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기워 입는 일이 다반사였다. 팔꿈치가 닳으면 덧댔고, 무릎이 해지면 또 덧댔다. 그래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다 그렇게 살았으니까.
하루에 두 끼를 온전히 먹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가을 추수가 끝난 논에 가면 떨어진 벼 이삭을 주워 모았다. 감자나 고구마를 캐고 난 밭에 남은 것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배고픔은 늘 곁에 있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손에 잡히는 것을 주워 모으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이웃과 나누고, 함께 견디며, 웃음까지 잃지는 않았다.
우리 세대의 청년들은 또 다른 길을 걸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국방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최전방으로 불려 가 3년을 보내고, 제대 후에는 돈을 벌기 위해 중동의 사막으로 떠났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먼 나라에서 흙먼지와 더위를 견디며 가족을 부양했다. 나 역시 그 시대를 통과한 사람 중 하나였다. 고생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을 돌아보면, 세상은 참 많이 달라지고
너무나 좋은 세상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 농민수당과 직불금,
각종 장려금과 지원금이 있다.
일정 연령이 넘으면 기초연금이 나오고, 의료 혜택도 넓어졌다. 나이가 들면 지하철은 무료이고, 열차는 할인되고, 극장도 절반 값이다. 학교에서는 무상급식이 이루어지고, 교육비 부담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었다. 기본적인 생활을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져 주는 너무 좋은 시대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참으로 거친 세월을 건너왔다.
신문 배달을 하며 새벽을 맞았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다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트랙터도 없던 시절, 소에 쟁기를 매달아 논을 갈았다.
마당 한편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와 장작 타는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남아 있다. 겨울이면 해진 옷을 몇 겹씩 껴입고 살았다. 손은 늘 갈라졌고, 발은 늘 시렸다. 그래도 우리는 자랐다. 그리고 살아냈다.
설날 아침, 떡국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세배를 하던 기억.
어머니의 손은 거칠었지만 따뜻했다.
아버지의 기침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지만, 그 안에는 가장의 책임이 담겨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부족했지만, 서로를 향한 정만큼은 넉넉했다.
지금은 너무 풍요로운 시대다.
마트에는 먹을 것이 넘치고, 옷은 계절마다 바뀐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세상은 빠르게 돌아간다. 예전의 고생을 떠올리면 지금은 분명 살 만한 세상이다. 그런데도 불평과 불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배고픔은 면했지만, 마음의 허기를 또 다른 방식으로 안고 사는지도 모른다.
나는 설날이 오면 그 시절을 떠올린다.
가난했지만 감사할 줄 알았던 시간들.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난 우리 세대의 끈기와 인내.
세상은 너무 좋아졌다.
그러나 좋은 세상일수록, 지나온 시간을 잊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날은 단지 한 해의 시작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되묻는 날이기 때문이다.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며 나이를 한 살 더 얹는 날,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불평보다 감사가 많기를, 부족함보다 나눔이 크기를. 그리고 이 좋은 세상을 살아가는 후손들이,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헛되이 여기지 않기를.
설날은 그래서 고맙다.
잊고 지낸 지난 세월을 다시 꺼내어,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