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늘은 무채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잔뜩 찌푸리고, 창밖에는 소리 없이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베란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니 차가우면서도 비릿한, 그러나 왠지 싫지 않은 내음이 훅 하고 밀려듭니다.
그 향기에 끌려 우산을 챙겨 10층에서 1층까지 걸어 밖으로 나서 봅니다. 빗방울이 우산 위에 톡톡,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아파트 화단을 보니,
아!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터질 듯 몽글몽글 피어있던 벚꽃들이, 오늘은 비를 이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들이 비와 섞여 하얀, 아니 연분홍색 비가 되어 내립니다.
이른바 ‘꽃비’입니다.
마치 하늘에서 연분홍 눈이 내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곱고도 애처로운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축축하게 젖은 아스팔트 바닥 위는 이미 먼저 내려앉은 꽃잎들로 수를 놓아, 마치 연분홍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합니다.
비가 내려 미끄러운 아스팔트 위를 조심조심 걸으며, 저는 문득 지나온 세월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 벚꽃과 참 많이 닮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삶은 하루하루가 은혜이자 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벚꽃들이 저토록 화사하게 피어났던 것은, 기나긴 겨울의 추위를 견뎌내고 햇살과 바람의 은혜를 온몸으로 받아들였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거저 주어지는 자연의 혜택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축복입니까.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그 화려함도, 결국은 비바람이라는 시련 앞에 한순간에 흩어지고 맙니다.
지금 내리는 이 꽃비처럼, 우리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도, 또 우리가 움켜쥐려 했던 수많은 것들도, 언젠가는 흐르는 시간 속에 흩어져갈 것임을 압니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시련의 비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꿈이나 노력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젖은 꽃길을 걸으며 절망보다는 감사를 떠올립니다.
흩어지는 꽃잎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꽃이 져야 비로소 열매가 맺히고, 또 다른 생명이 움트듯이, 우리 삶의 시련과 이별 역시 성숙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과정임을 믿습니다.
오늘 내리는 이 차가운 비가, 누군가에게는 외로움이나 슬픔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비는 메마른 땅을 적셔 새싹을 틔우는 소중한 생명수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행복은 우리를 향해 미소 짓습니다.”
비록 비가 오고 날은 흐리지만, 꽃비 내리는 이 풍경을 마주할 수 있음에,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해 봅니다. 이 비를 이겨내고 나면, 또다시 푸르른 신록의 계절이 우리를 반길 것입니다.
떨어진 꽃잎들이 진흙에 더러워질까 염려되기보다는, 대지를 비옥하게 할 거름이 되어 더 튼튼한 나무를 키워낼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오늘 하루,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가 넘치는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걸음걸이 조심하시고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며 마음의 평온을 찾으시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