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시장 만보 걷기

by 자봉

평소 혈압과 고지혈증이라는 불청객을 다스리기 위해 정기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집 근처 가정의학과 의원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마음은 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특히나 췌장 건강을 염려하여 당뇨만큼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로 매일같이 만 보 이상의 발걸음을 지면에 새기며 건강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 온 터라 20일 전 실시했던 콜레스테롤 검진 결과가 나오는 오늘은 마치 성적표를 기다리는 수험생 마음이다


이윽고 마주한 의사로부터 "그간 관리를 정말 잘하셨다"라는 양호한 판정을 듣고 나니 그간의 노고가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지며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안도감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기분 좋게 병원 문을 나서니

걱정했던 마음을 동력 삼아 과거 내가 '업무를 담당하며 직원들과 누볐던 옛 추억의 현장을 더듬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 2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추억의 파편을 찾아 대림역에 내려 과거 그 자리에 있었을 꽃 파는 상점을 찾아보았으나, 세월의 파고는 너무도 높고 거세어 내가 기억하던 그 정겨운 꽃집의 흔적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으며, 대신 그 자리를 가득 메운 것은 중국 교포들이 촘촘하게 형성해 놓은 낯선 풍경의 대림동 시장이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중국어 대화와 화려하다 못해 눈이 어지러운 한자 간판들의 향연 속에서 이곳이 과연 한국의 땅인지 아니면 거대한 중국의 어느 거리로 순간 이동을 한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묘한 이질감이 밀려왔다.

길게 늘어선 이국적인 상점들을 구경 삼아 낯선 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거리를 걷다 보니, 30년 전만 해도 이 동네의 랜드마크로서 위용을 자랑하며 내 눈에 참 좋게만 보였던 '태양의 집' 썬 플라자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고, 그 빛바랜 건물과 수녀원 방향을 따라 묵묵히 걷다 보니 어느새 발걸음은 신풍역에 다다랐다


인근의 백악관 예식장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세월을 버텨내고 있었고 지하철 직원들의 승무 사무실과 그 사이사이에 우뚝 솟은 현대적인 신축 건물들이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묘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우중충하고 낮은 구름이 내려앉아 음산한 기운마저 감돌았으나, 은퇴 후 10여 년 만에 중국인 특구라 불러도 손색없을 대림동 시장통을 구석구석 훑으며 걷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를 만큼 몰입하게 되었고, 비록 거리 곳곳에서 배어 나오는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내 입맛에는 영 맞지 않아 고개를 내젓게 만들었지만, 25년 전 직장 동료들이나 이웃 주민들과 어울려 가끔 찾았던 이곳의 공기를 다시 마시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옛 기억들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사실 그 기억들이 사무치게 그립거나 유달리 아름다운 추억들만은 아닐지라도 남부도로사업소나 명지병원 같은 옛 건물들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치 오랜 세월 연락이 끊겼던 고향 친구를 만난 듯 정겨운 마음이 들었고, 결국 오늘 원래 목적했던 꽃을 구입하는 데는 실패하여 아쉬운 마음이 발끝에 남았지만, 그래도 건강을 확인받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만 보의 도보를 완수하며 옛 기억의 습작들을 다시금 펼쳐보았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였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대림동이 중국인들이 많이 살아 한때는 영화의 소재도

되었고 강력사건이 발생하여

매스컴에 오르내린 적도 있지만 깨끗하고 살기 좋은

지역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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