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 없는 동생에게

by 자봉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어느덧 모든 것이 희미해졌건만, 내 손바닥 위에 놓인 빛바랜 사진 한 장은 여전히 가슴 시리게 선명하다. 사진 속에는 앳된 얼굴의 내 남동생 금채와, 살아생전 친절했던 서울 영등포 어느 새마을금고의 여직원 윤숙 씨가 신랑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다. 남들은 기이한 인연이라 말할지 모르나, 내게 이 사진은 동생을 가슴에 묻은 한 형이 해줄 수 있었던 마지막 사랑이자 하늘이 허락한 기적 같은 만남의 기록이다.

내 밑으로 여덟 살 터울이 졌던 남동생 금채는 내게 동생 이상의 존재였다. 1997년, 교정직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일하던 녀석은 손재주도 좋아 고장 난 것이라면 무엇이든 뚝딱 고쳐내곤 했다. 성격은 또 어찌나 곰살맞고 착한지 형제들 사이에서도 우애가 깊었고, 부모님께는 더할 나위 없는 효자였다. 영등포 옥탑방에서 함께 자취를 하며 나누었던 온기는, 힘겨운 서울 생활 속에서 서로의 삶을 지탱해 주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런 동생이 스물아홉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결혼도 하지 못한 미혼의 몸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어머니는 넋을 잃으셨고, 나 또한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을 겪었다. 혼자 저 멀리 외로운 길을 떠났을 녀석을 생각하니 잠을 자도 자는 것이 아니요, 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 옆 새마을금고에 들렀는데, 늘 보이던 여직원의 모습이 며칠째 보이지 않았다. 평소 참하고 성실해 보여 눈여겨보았던 아가씨였다. 예감이 이상해 뒷자리에 앉은 전무님에게 슬쩍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그 여직원이 얼마 전 연탄가스 중독으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번개라도 친 듯한 전율이 일었다. 내 남동생과 그 여직원이 세상을 떠난 시기가 너무나 비슷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아니면 하늘이 맺어 준 못다 한 인연일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아버지 주소를 찾아 정성껏 편지를 썼다. 내 동생의 사연과 따님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며, 저세상에서라도 두 사람이 외롭지 않게 인연을 맺어 주면 어떻겠냐고 간곡히 청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얼마 후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답장이 왔다. 그분 또한 금쪽같은 딸을 앞세운 슬픔에 잠겨 계시다 나의 제안에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느 좋은 날, 내 고향 집 마당에서 특별한 예식이 거행되었다. 신랑과 신부는 없지만 그들의 영혼이 머물 자리가 마련되었다. 여직원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참석하셨고, 무당의 굿소리와 함께 정성스러운 상차림이 차려졌다. 나는 남동생과 제수씨를 위해 새 구두와 시계를 맞추고, 모든 예식 비용을 기쁜 마음으로 부담했다. 비록 살아생전 마주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이 정성이 하늘에 닿아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기를 간절히 빌었다.

예식이 끝나고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 사진이 만들어졌을 때, 나는 비로소 가슴속 응어리졌던 돌덩이가 조금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어머니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지셨다. 둘째 아들을 장가보내지 못한 한이 씻겨 내려간 듯했다.

그로부터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그분들의 생사조차 알 길 없고 세월의 무게에 기억도 가물가물해질 법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결혼식 사진을 보며 혼잣말을 건넨다.

“동생아, 그리고 제수씨. 저세상에선 아프지 말고 꼭 손잡고 다니거라. 형이 맺어 준 인연이니 서로 아껴 주며 행복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비움으로 채우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