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구매

by 자봉

찬란한 윤슬이 부서지는 토요일 아침,

중학교 동창과 사전에 약속했던 학여울역 건축

박람회장 견학을 가는 날이다


친구는 부천이 자택이라 나보다 더 빨리 출발했고

전시장 앞에 도착하니 입장료가 만원이라고 한다

각 분야별로 전시된 컨테이너 하우스와 하우징 주택들의 건축적 미학을 관조하며 안분지족의 여유를 만끽하는 것으로 그 화려한 서막을 열었다


출입구 주변에 설치된 각 부스를 관람하고

지하철 3호선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동맥에 몸을 싣고 도착한 종로 3가의 익선동 골목은,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와 현대적인 감각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가운데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여행자들의 생경한 언어와 이제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은 젊은이들의 찬란한 활기가 교차하는 거대한 용광로와도 같았다ㆍ

청수당 베이커리점의 고소한 빵 냄새가 유혹하는 골목길 한편에서 단돈 만 원으로 누린 소박하지만 정갈한 오찬은 대도시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소소한 기쁨의 본질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발길을 옮겨 50년 전ㆍ

나이 열아홉 살 혈혈단신 맨몸 하나에 꿈을 싣고 상경하여 모진 풍파를 견디며 청춘의 눈물을 쏟아냈던 옛 터전에 다다르니 마음이 착잡해지고 고생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 ㆍ

재개발이라는 거대한 시대의 물결 속에 세운상가 근처의 낡은 건물들은 가림막 뒤로 자취를 감추었으나 그 땅에 새겨진 고통과 인내의 흔적은 여전히 나의 가슴속에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삶의 강인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광장시장의 활력과, 시중가보다 훨씬 저렴한 3,000원의 공임으로 멈춰버린 세월의 손목시계 초침을 다시 돌려준다

옛 세운상가 함흥냉면 건물과 시계 골목들은 재개발이라는 명칭으로 온 데 간데 없어지고 시계 점포는 광장시장 입구 지하상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단돈 만 원에 새 생명을 얻은 가발의 정갈함은 30

년 공직 생활을 통해 체득한 근검절약의 미덕이 인생 후반전에서 얼마나 찬란한 삶의 지혜로 빛날 수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종로 6가 꽃 도매시장의 시끌벅적한 생동감 속에서 개당 천 원이라는 경이로운 가격에 건져 올린 연두포와 화사한 화초들의 눈부신 자태를 한 손에 들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은, 단순히 저렴한 물건을 샀다는 만족감을 넘어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승리의 만족함'을 느낀다


저녁볕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늦은 오후에 사 온 화초들을 거실 창가에 심는다 ㆍ

오늘의 땀방울과 추억이 서린 꽃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심어 놓으니, 비싸지 않은 꽃일지라도 그 속에 깃든 우정의 향기와 발품의 노고가 화사한 꽃잎마다 서려 있어 집안은 이내 봄의 향연으로 가득 차 오른다 ㆍ

은퇴 후 맞이한 삶의 계절에서 나 스스로 일구어낸 가장 고결하고도 향기로운 성취감을 느낀다

오늘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창가의 꽃들을 바라보며 내 인생의 장부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연상해 본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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