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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May 05. 2024

딸 바보

보고 또 봐도 예쁜 딸!

1. 보고 또 봐도 끝없이 예쁜 딸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싱그러운 여왕의 계절 

5월이다.

어제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췌장에  이상이 있다고 하여 지하철을 타고 삼성병원에 가서 ct검사를 하고

건강하게 살아보기 위해 혼자 독립문역으로 가서 

700미터의 길이로 훌륭하게 조성된 황톳길과 서대문 안산자락길에 갔다.


자락길을 따라 쭉 뻗은 메타세쿼이아길을 걷고 집에

오니 한결 컨디션이 좋다

오후가 되어 책장 어딘가에 잘 보관된 앨범을 꺼내

정리를 하다 보니 65년 전 큰 딸이 백일 되던 날 집 근처 사진관으로 보듬고 가 추억을 남겨주기 위해 

백일사진을 찍어준 기억이 생생하다

               (큰 딸 백일 전에 촬영한 기념사진)



그때는 내가 스물아홉에 결혼해서 초등학교 동창이고 반장이었던 b군이 이자를 주겠다고 하여, 직장 동료들에게 여기저기 부탁을 하여 100만 원을 만들어 빌려주고, 또,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데 보증을 서 달라고 하여 100만 원짜리 보증을 서주었더니 사기를 치고 도망가고 잠적해 버려 그 당시 내 월급이 10만 원이었는데

월급에 압류를 당하고 사기를 당해 돈이 없어 직장과 멀리 떨어진 경기도 부천 중동역 근처에 650만 원짜리

전세를 얻어 신혼살림을 차렸다.


물론, 가장 믿었던 죽마고우에게 사기를 당했으니 당연히 돈도 없어 고향 농협에서 장기로 400만 원을 대출

받아 매달 꼬박꼬박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다 보니 생활비가 부족해 신혼생활은 팍팍했다.

그래도 깨알 같은 신혼생활에 근검절약 생활이 몸에 베인  아내를 만났으니  알뜰쌀뜰 살림을 잘해 어머님이

큰며느리인 아내를 참 많이 예뻐하시고 사랑하셨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아내는 큰딸 아이 백일사진을 촬영하러 가자고 하는데, 항상 돈이 부족했던

나는 백일사진 촬영하는데 별로 달갑지 않았으나 아내의 말을 듣고 큰 아이를 보듬고 중동역 근처 사진관에

가서 백일사진을 촬영했다 


지금 생각하니 아주 잘한 일이고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평생을 두고 후회했을 것인데 이렇게 예쁜 백일  

사진을 남겨 두었기에 지금도 사진을 보면서

그때를 추억한다.



그때 살았던 신혼집은 방은 한 개이고,

비가 오면 항상 천장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여기저기 세숫대야와 바케스를 대 놓고 빗방울이

장판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새우잠을 자야 했던 날들,


어디, 그뿐이었던가!

단독주택이다 보니 큰아이 기저귀를 손 세탁해

햇볕이 드는 옥상으로 기저귀와 빨래를 줄에 걸고

말리려고 하면 계단을 이용한다고 툭툭 거리며

심술을 부리던 주인집 아주머니,


큰아이가 잠을 제대로 못 자 칭얼거리고 울면                         (작은딸 4세때)

시끄럽다고 찾아와 잔소리를 하고 갔던 그 주인집

아주머니 지금은 잘 살고 계실는지 모르겠다.

                                                                                                    )



백일 지난 큰 딸은 엄마를 닮아 똑똑했고, 방에 눕혀 놓으면 기어와 아내가 부엌에서 손빨래를 하면 가까이

다가오다가 경사가 많이 생겼던  타이루 부엌으로 낙상했어도 간난이라 그런지 다치지는 않았다.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세입자 생활은 힘들었어도 딸아이는 영특해 또래의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에

자주 찾아와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 모범 가정이었다

아내가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 교사로 근무했었기에 아이들 정서와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된 것을 인정하고 고마울 뿐이다.


큰딸이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도 잘해

표창과 상장도 자주 받아 오다 보니 집념이 강했던

작은딸도 언니에게 뒤질세라 시험 때는 잠을 자지 않고 밤새도록 공부하여 학교에서 남학생들을 물리치고 학급에서 반장이 되고 전교 어린이회 부회장도

       (설악산 계곡에서 딸과 함께)


하면서 힘들었던 우리 부부에게는 힘이 되어 주었다.



이렇게 유아 때부터 기본교육이 착실하게 다져왔던 아내의 덕택인지 예쁘고 착하게 성장해서 공부도 잘해

우등상도 받고, 너무 쉽게 수시로 대학에 합격해서 성적 우수 장학금도 받고, 본인들이 돈을 벌어 대학원도

졸업하고 외국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와 외국인들과 거침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노라면 부모로서

가슴 뿌듯하다


큰아이는 경제학과와 경영학을 전공해  세계 굴지의 외국회사에서 팀장으로 근무하고, 작은 아이는 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더니 언론고시라고 하는 신문기자에 합격해 연약한 여성으로 새벽

부터 밤늦게까지 두 발로 현장을 누비면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으니 각자 딸들이 전공을 살려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으니 그저 사랑스럽고 대견할 뿐이다.


부모가 되어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해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주지도 못했는데, 

오히려 딸 둘이 몸이 아픈 아빠를 걱정해 주면서 

때로는 용돈도 자주 주니 "잘 키운 두 딸, 열 아들

 부럽지 않다"  


오늘도 나는 딸 바보가 되어도 좋다... 

 사랑하는 딸 둘을 볼 때마다 마음이 듬직하고 

 든든하다





    (사이가 너무 좋은 두 자매

    보기만 해도 기분좋고

     힘이 저절로 나는 자녀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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