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탑

이탈리아의 흥망성쇠

by 성주영


저기 저 우뚝 솟은 탑 그러나 기울어진 탑


고대의 찬란했던 제국을 계승했으나


그 제국 만도 못한 후예와 닮아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 후예의 가슴 한편에는

그 찬란했던 고대 제국의 정신이 남아 있다.


그때의 그 시절 영광이 드높았던 그 시대로 도약하기 위해


오늘도 기울어진 탑을 품은 후예는 미약하나마 긴 침체기를 딛고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해설: 이 작품은 이탈리아에 관한 작품입니다. 아시다시피 이탈리아는 세계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로마 공화국부터 로마 제국을 비롯한 팍스로마나, 르네상스로부터 기인한 인본주의•복고주의 운동과 예술의 부활(Renaissance를 이탈리아어로 부활을 뜻하는 Rinascita에서 나온 단어로 즉 중세의 신중심적 사고관에서 탈피해 고대 그리스의 인본주의적•인간중심주의적 복고 운동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등이 있죠. (여담으로 종신 노역형을 주장한 체사레 베카리아 역시 이탈리아 출신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제목인 기울어진 탑 즉 피사의 사탑 역시 이탈리아 피사에 위치하죠.)


이후 19세기 중반(1859-1861) 재상 카보우르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그리고 가리발디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통일 운동(사르데냐-오스트리아 전쟁=2차 이탈리아 통일 전쟁/1859과 가리발디가 이끄는 붉은 셔츠 의용대의 양시칠리아 합병/1860 등)을 거쳐 이탈리아 왕국을 수립합니다. 이때부터는 제국주의 열강으로서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치고 다닙니다. 이렇게 1차 대전 직전까지 리비아, 이탈리아령 소말리아, 에리트레아를 식민지로 삼았고 중국에는 톈진 조계지를 역외 영토로 두는 등 강대국의 면모를 보이다가 1차 대전에서 동맹국에서 협상국으로 전환한 뒤 승전국에 섭니다.


(여담으로 1848년 프랑스의 2월 혁명의 여파로 오스트리아에서는 3월 혁명이 터지자 이를 진압하기 위한 정부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라데츠키 행진곡을 작곡합니다. 여기서 라데츠키는 1848-1849년에 있었던 1차 이탈리아 통일 전쟁 당시 이탈리아 북동부의 롬바르디아에서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장군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이 라데츠키 장군을 통일에 해가 된 인물로 간주 지금도 이탈리아에서는 라데츠키 행진곡에 대해 긍정적 반응이 잘 없습니다. 다만 파시스트 이탈리아나 이와 관련한 경례, 무솔리니 옹호 등에 대한 처벌은 가볍게 넘어간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베르사유 강화 조약 결과 별다른 식민지를 얻지 못하고 곧이어 경제 문제와 여러 내부 정치적 혼란기가 존재하던 중 1922년 무솔리니는 이런 불만을 타개하고자 로마 진군을 성공시키고 파시스트 이탈리아를 수립합니다. 1929년 경제 대공황으로 이탈리아의 경기 침체가 지속되자 무솔리니는 해외 시장 확보와 원료 공급지 확대를 위해 식민지 확보의 필요성을 절감 또한 국내 정치적 결집과 선전을 위해 1935년 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을 통해 에티오피아를 식민지화 1939년 4월에는 알바니아를 보호국화시키는 등 대외 팽창을 이어갑니다.


그다음 2차 대전이 발발 나치가 프랑스를 전격전으로 6주 만에 함락시키자 중립적 스탠스를 취하며 방관하던 이탈리아는 추축국에 가담 1940년 그리스 침공을 시작으로 아드리아해 연안을 확보, 북아프리카에서 영국령 이집트를 일부 점령, 프랑스령 튀니지를 점령, 영국령 동아프리카를 휩쓰는 기염을 토합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영국에게 역전당하며 이탈리아는 1943년 9월에 항복 남쪽에는 연합군 군정청이 북쪽에는 나치의 도움으로 탈출한 무솔리니를 중심으로 살로 공화국이 세워지나 나치 패망과 함께 무솔리니는 파르티잔들에 의해 붙잡혀 사망 이후 하나의 이탈리아 공화국이 들어섭니다.


냉전 시기 NATO의 일환으로 주요 동맹국 역할을 자처했고 1960년부터 1970•80년대까지는 그래도 중공업 강국으로서 수출을 통해 나름 부유국이었으나(이 시기를 이탈리아의 경제 기적이라고도 부름.) 방만한 재정 정책과 과도한 포퓰리즘, 연이은 대외적 경제 위기(1•2차 오일쇼크) 등 때문에 이탈리아 경기는 침체하기 시작했고 자국 내 중앙은행의 금리와 화폐 정책으로 간신히 버티다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 EU에 가입한 이후에는 화폐 통합으로 인해 불가능해지면서 만성적인 경제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미국발 금융 위기)로 다시 한번 경제 위기에 빠졌다가 긴축 재정과 EU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빠져나왔으나 이후에는 다시 한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탈리아 경제의 한 축인 관광업이 위축되고 경기 부양을 위한 국내 화폐 유통량 급증 그리고 경직된 노동 시장과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등으로 다시 한번 경기 침체에 빠져나와 좀처럼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지를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이탈리아는 GDP 규모가 세계 12위라는 기염을 토해내며 여전히 G7의 일원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이탈리아는 남부와 북부 간의 경제 구조의 차이와 그로 인한 빈부격차와 이로 인해 빚어진 지역 경차와•감정 등이 또 다른 문제입니다. 북부와 중부에는 중공업부터 시작해 여러 명품 관련 기업들이 집중되어 있으며 그에 반해 남부는 관광업을 위주로 경제 구조가 편성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북부 사람들은 이런 남부를 못 산다고 은근히 무시함으로써 남부 사람들은 북부에 대한 자격지심과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화되면서 서로 대립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물론 옛날에 비하면 덜 한 편이고, 이는 어디까지나 나이가 많은 세대 즉 젊은 층보다는 노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이탈리아가 해결해야 하는 국내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분포도(남부보다는 주로 중•북부에 밀집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주요 기업 분포도(이 사진에서도 주요 기업들은 죄다 중•북부에 밀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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