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그곳
그곳에서는 온갖 열정이 난무하다.
흔히들 그곳 사람들은 사랑마저도 열정적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열정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했고, 새로운 걸 발견했다. ‘멀리 더 멀리’라는 신념 하나로
또 그런 열정 하나로
세계를 뒤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열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듯하다.
이들의 열정은 여전히 식지 않았으나 그 빛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열정으로 전 세계를 뒤집어 놓았던 것처럼
이제 다시 한번 그 열정이 빛을 발해 장기간 지속된 어둠을 뚫고 재도약하기를 바라며…
해설: 위 작품은 이베리아 반도(스페인+포르투갈)에
대한 작품입니다. 아랍 왕조 중 우마이야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후 우마이야 왕조가 무너지고 아라비아 반도와 중앙아시아 쪽에는 아바스 왕조가 들어서고 북아프리카에는 파티마 왕조 이베리아 반도에는 후우마이야 왕조가 들어서면서 아랍 세계는 여러 세계로 쪼개집니다. 이후 이베리아 반도 일부 지역에는 여러 카톨릭 왕국이 수립되고 후우마이야 왕조와 대립합니다. 이를 레콩키스타(재정복 운동)이라고 부릅니다(예, 영어의 reconquest=재정복을 스페인어식인 teconquèsta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 재정복 운동운 718-1492년까지 지속됩니다. 이 시기 생겨난 대표적인 카톨릭 국가에는 카스티야, 아라곤, 나바라, 레온 등이 있습니다.
나바라 왕국은 둘로 쪼개져 하나는 카스티야에 의해 하나는 프랑스에 의해 합병당하고 레온 왕국은 카스티야에 의해 합병되었고, 나중에는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디난도가 결혼을 하며 카스티야-아라곤 연합 왕국을 수립했습니다. 포르투갈은 레콩키스타가 한창이던 12세기 카스티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카톨릭 세력은 후우마이야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1492년 카톨릭 국가였던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이 드디어 이슬람의 마지막 근거지인 그라나다를 정복하자 레콩키스타는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레콩키스타가 끝난 것을 기념해 이사벨라 여왕은 콜럼버스를 등용 신항로 개척에 내보냈고, 콜럼버스는 서인도 제도(현재 쿠바)를 발견한 뒤 사망합니다. 이후 마젤란과 그의 일행은 세계 최초로 전 세계 일주에 성공합니다. 비슷한 시기 1488년에는 포르투갈 역시 엔히크 왕자의 지원을 필두로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남쪽으로 48km 떨어진 곳)에 도착했고 1498년에는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캘리컷에 도착해 이미 무역 활동을 하던 이슬람 상인들을 대포로 몰아내고 무역 거점을 확보합니다.(근대 포함 외교의 시초)
당시 포르투갈은 베르수라는 소형 청동 대포와 후장식 선회포를 경량화시켜 배에 탑재시킬 수 있었을 정도로 군사력이 막강했습니다. 또한 범선의 개량이 이뤄지고(기존의 갤리선에 인력을 많이 태우자 보급품을 많이 적재하게 되고 적재량의 한계로 인해 장거리 항해 시 부족한 보급 문제와 인력으로 노를 저어 가는 거라 장거리 원정이 불가능했으나 범선의 개발로 배의 크기가 더 커지며 보급품을 많이 탑재할 수 있게 되고 적은 인력으로도 돛을 통한 바람의 활용으로 장거리 원정이 가능해졌기 때문) 나침반의 발명과 로그 함수의 발견으로 거리 계산이 수월해져 항해가 쉬워졌기에 이런 신항로 개척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대서양 삼각 무역 체제(총•화포•가공품 등이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흑인 노예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사탕수수나 옥수수•양파•고구마•감자•금•은 등이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유입되는 무역 양상)가 기존의 지중해 무역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이는 유럽에 자본주의와 금융업 그리고 상공업의 발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최초의 인플레이션인 가격혁명 역시 이때 발생했습니다. 이렇듯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신항로 개척에 목숨을 건 이유는 다름 아닌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지중해 무역에서의 소외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남미와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 수많은 무역 거점(호르무즈 해협, 마카오, 믈라카 해협, 브라질, 멕시코, 쿠바 등)을 확보해 세계 최초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토르데시야스 조약(대서양을 기점으로 서쪽은 포르투갈이 동쪽은 에스파냐가 식민 지배한다는 내용의 조약)이죠. 에스파냐의 경우 포르투갈 왕위가 단절되면서 중간에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 왕위까지 겸임해 포르투갈 식민지까지 지배하게 되며 최대 영토를 확보합니다. 그리고 에스파냐의 함대는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며 교황청으로부터 무적함대라는 칭호까지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전성기도 얼마 안 가 30년 전쟁(이 전쟁에서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펠리페 2세는 같은 카톨릭 출신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를 도와 참전합니다.)과 80년 전쟁=네덜란드 독립 전쟁을 비롯해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 때 이은 영국의 해군력 증강과 칼레 해전에서의 패배 등 연이은 전쟁으로 인한 재정 낭비와 산업 구조의 한계(왕립 공장 건설을 비롯한 상공업 육성보다는 식민지에서 수탈해 온 것들을 가져다 파는 식의 무역•상업 활동 중심) 등으로 에스파냐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네덜란드가 80년 전쟁=네덜란드 독립 전쟁 이후 해상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에스파냐•포르투갈의 무역 거점을 하나씩 정복해 나갔습니다.
이후 세월이 흘러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게 결정적 타격을 날린 건 나폴레옹 전쟁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이베리아 반도 전쟁(1808-1814) 때문에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본토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를 틈 타 에스파냐•포르투갈의 남미 식민지들은 본토에서 차별받아서 남미로 넘어온 백인 귀족 즉 크리요올을 중심으로 하나, 둘 독립합니다.(멕시코와 브라질 등) 이때 통일을 주도한 인물들이 바로 오이긴스(칠레 담당), 시몬 볼리바르(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페루, 콜롬비아 담당), 산 마르틴(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담당)입니다. 이후 스페인의 경우 1898년 미국-에스파냐 전쟁으로 미국에 의해 남아있던 식민지(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쿠바 등)마저 빼앗기며 남는 식민지라고는 스페인령 서사하라, 적도 기니가 전부였습니다.
이후 1936년 좌파 정권이 당선되자 프랑코를 중심으로 보수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에스파냐 내전이 터지고 나치와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도움으로 프랑코가 파시스트 정권을 수립합니다. 이후 스페인은 은근슬쩍 나치의 독-소 전쟁을 지원해 줍니다.(의용군 형식으로 독-소 전쟁에 병력을 지원하는 등) 나치 패망 이후 스페인의 프랑코는 눈에 띄지 않는 행보로 추축국을 도와줬기에 전범 처벌은 피해 가고 이후에도 그의 일당 독재는 지속되지만 그가 죽은 후 스페인은 민주화 운동으로 민주화를 이룩합니다. 비슷한 시기 옆동네 포르투갈에서는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군부 독재에서 벗어납니다. 이 시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나름 중공업 강국으로서 경제 강국 위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지는 포퓰리즘 정책과 비효율적인 재정 정책•과도한 지출 등으로 경제에 부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별다른 기술 혁신 없이 점점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다가 결정적으로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때 금융과 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경제의 한 축인 관광업마저 안 좋아진 데다 경기 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에서 과도하게 화폐를 찍어내는 바람에 인플레이션 유발되어 여전히 경제난에 빠져있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두 이런 상황에서 G20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스페인의 경우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분리 독립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여기는 예전부터 독자적인 고유 문화가 자리 잡혀 있었기에 현재 스페인과 함께 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높습니다. 이게 스페인의 지역 갈등이 유발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간의 경쟁도 이와 관련이 있죠.) 하지만 이 지역은 특히나 중공업과 관광업의 핵심 요충지로 스페인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곳으로써 스페인 정부는 카탈루냐 지역의 독립을 원치 않고 있습니다. 이 지역 갈등과 분리 독립은 앞으로 스페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 둥 하나입니다. 또한 여담으로 포르투갈은 2001년부터 마약 중독자들을 범죄자가 아닌 치료의 대상으로 간주, 심리 상담과 이들이 마역 산업에 빠지지 않도록 여러 법적•경제적 지원을 해주며 마약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역시 제공해 마약 퇴치 사업을 성공시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