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밤, 내가 느낀 건 자괴감이었다.
• 이번 글은 그냥 간단한 사유를 위해 작성된 글입니다 현재 작가의 상태와 작가 본인이 문득 요즘 강하게 느끼는 것을 공유하고자 간단히 글을 남깁니다.
2025년 5월 19일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던 중 기흉이 터졌다. 중학교 1학년(14살) 때 첫 기흉이 터졌고 그 이후로 수술 한 번과 삽관을 두 번이나 했다. 이를 제외하고도 일상생활에서 살짝 터졌다 회복된 것까지 포함하면 셀 수 없이 많다. 7년을 기흉이라는 놈과 동거를 했다. 남들은 이성과 동거를 할 때 난 기흉과 동거라니…. ㅋㅋㅋㅋ 참 우습다 ㅋㅋㅋㅋ
6월 모고를 앞둔 그날(5/19) 기흉이 터졌고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옷을 갈아입는데 숨을 쉴 수가 없는 수준이었고, 방에서 화장실까지 몇 발자국 걸어가는데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숨이 넘어가기 직전 누나의 권유로 급하게 119를 불러 응급실로 들어왔다. 남들 다 잘 시간에 본인은 응급실 행이라니 ㅋㅋㅋㅋ 그때가 본인이 기억하기로는 밤 12시와 새벽 1시 사이였다.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달까? 진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기에 응급대원들에게도 화를 냈다. 숨이 차서 말도 할 수 없을 지경이니 대화가 안 되었고 제스처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식은땀은 나고 온몸은 부들부들 떨고 숨은 안 쉬어지니 짜증이 폭발 직전이었다. 그래도 응급 대원 세 분 모두 좋으신 분들이라 다들 그 짜증도 받아주시고 덤덤히 일하시는 걸 보고 내가 괜히 미안해졌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아들이 죽을까 봐 무서워 옆에서 엄청 불안해하셨다.
구급차는 야밤에 미친 듯이 영대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여기서 기흉이 처음 터졌을 때 수술과 삽관을 모두 받아 담당 교수님과 연이 있었고 외래 진료도 이 교수님께서 봐주셨기에 교수님 성함을 대고 응급실로 직행했다.(이전에 이 교수님한테서 수술받았을 때 교수님이 내게 기흉 터지면 자기 이름 대고 응급실로 오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고 그게 진짜로 먹힌 것이다 또 우리 아버지가 영대 병원 호흡기내과에 아는 분이 계셔서 그 연을 통해 위에서 언급한 기흉 담당 교수님과 연결될 수 있었고 그때의 그 연이 지금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요즘 의정 갈등으로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일어나 죽는 응급 환자가 많은 지금 본인은 참 행운아였다.
그렇게 새벽 1시가 넘어 삽관을 실시했다. 본인은 숨 넘어가기 직전이었고 눈은 자꾸만 감겼다. 의사와 간호사 여러 명 또 어머니가 함께 달라붙어 막 뭐라고 말씀들 하셨는데 전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숨 넘어가는 사람한테 뭘 말하면 들리겠냐고요^^) 그렇게 삽관이 끝난 후
(삽관을 맡으신 선생님께서 내가 많이 얄미우셨나 보다 그냥 관을 꽂는 게 아니라 막 꽂으신다. 아파?라고 물으시면서도 그냥 아랑곳하지 않고 꽂으신다. ㅋㅋㅋ 아니 그럴 거면 왜 물어보시냐고요^^ ㅋㅋ 그리고 더 웃긴 건 삽관하려고 옷을 벗겨야 하는데 내 상태가 망신창이라 옷을 벗길 수가 없어 옷을 찢을까? 물으셨다 근데 본인은 숨 넘어가기 직전이라 아무 소리도 안 들렸고 대답을 못 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찢는다? 뭐라고? 찢지 말라고? 찢을게 하시면서 그냥 그 옷을 쫘악 찢으셨다. 나중에 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니 그 옷 비싼 거였다고… ㅎㅎㅎㅎ 어머니 죄송해요^^ ㅋㅋㅋㅋ 그리고 한창 삽관을 하는데 간호사 한 분이 환자 분 눈 떠보세요 눈 떠보세요 이러는 데 아니 부분 마취로 헤롱헤롱한 상황이고 아직 삽관의 고통도 가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눈을 뜨냐고요^^ 여하튼 참으로 웃픈 상황이 많았다. 참고로 이 모든 건 나중에 삽관을 마친 후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ㅋㅋㅋㅋㅋ)
10-15분 있다가 점점 안정을 되찾아 간 나는 응급실에서 1시간 정도 어머니와 수다를 떨다가 입원 수속을 밟고 입원을 했다. 그날 너무 힘들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5일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 회복은 됐지만 속도가 느린 편이라 아직 안심할 수가 없다. 담당 교수님께서는 이번 주 주말 X-RAY를 찍어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하자고 하신다. 그리고 오늘 오전 일찍 X-RAY를 찍었고 오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어제랑 똑같고 줄지를 않아서 수술해야 할 듯하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전적으로 내 폐의 회복성에 달렸다. 현재 기흉이 왼쪽 폐에 심각하게 왔고 오른쪽에도 살짝 온 터라 수술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오른쪽 폐는 중학교 때 같은 교수님으로부터 수술을 받았다. 본인은 어릴 때 백혈병을 앓았고 항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오른쪽 폐기능이 크게 저하된 상태다. 하지만 왼쪽 폐기능은 정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른쪽보다 왼쪽에 더 심하게 기흉이 왔다는 건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뭐 물론 기흉은 소리소문 없는 암살자와 같은 질병이지만… 아래는 입원 후 현재 상태와 관련한 사진이다.
내 또래 남자들(21살 남자들)은 대학 가서 캠퍼스 생활하고 연애하고 알바 뛰고 군대 가는데 난 여기서 뭐 하고 있는지 참… 때로는 자괴감도 든다…. 근데 어쩌겠나? 이미 벌어진 일인 걸, 이렇게 태어난 걸 ㅎㅎㅎ… 그냥 느린 대로 뒤처진 대로 살아야지…. 죽을 용기는 또 없지 않은가? ㅋㅋㅋㅋ
이런 치부를 글로 옮긴다는 게 쉽지 않다. 그것도 브런치 스토리 작가로 입문한 지 5일 만에 말이다. 그럼에도 그냥 알리고 싶다. 자존감이 크게 떨어진 요즘 그냥 이를 통해 이게 나라는 놈이다라는 걸 알리고 싶다. 떳떳하게 살아보고 싶다. 그냥 자기 고백이라고 하면 편할듯하다… 세상은 이러한 자기 고백을 조롱하고 비웃을지언정 난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한점 부끄럼이 없도록 내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무것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가진 타이틀이자 자산이다.
구구절절 얘기가 길었다. 이제 남이 관심 없을 나의 아픔 말고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음 편에서 가볍게 해보고자 한다.
아 맞다. 글을 끝내기 전 전국의 기흉 환자들에게:
파이팅! ㅎㅎㅎ
PLUS:
나의 기흉 일지(일지라고 하기에도 뭐 하다만…. ㅋㅋ):
5/19: 기흉 발생-응급실 행 / 삽관 / 입원
5/20-23: 입원 중{아침 식사&약 복용&X-RAY 촬영&씻기 - 점심 식사&약 복용 - 저녁 식사&약 복용 루틴 반복 중 / 중간에 뉴스를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로 지식 채널을 보거나 챗GPT와 대화하거나 병원 마실(?)을 나가기도 한다.}
챗GPT야 고맙다 ㅋㅋㅋㅋ 외로운 나에게 너라도 위로가 돼주어서 ㅋㅋㅋㅋ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