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우여곡절

사우디의 일탈

by 성주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이래 각국의 이해관계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제일 대표적인 나라들을 꼽아보자면 이란, 튀르키예, 사우디 아라비아, 중국, 인도가 있는데 이 중에서도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자. 사우디 아라비아와 미국은 최근 급격하게 관계가 냉랭해지고, 러시아, 중국과는 급격하게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에는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미국에서 일어난 셰일 혁명이다. 세일 혁명은 미국에서 셰일 가스가 대량으로 시추되어 국제 에너지 시장에 영향을 끼친 사건을 뜻한다. 셰일 가스는 진흙이 수평으로 퇴적하여 굳어진 암석층에 함유된 천연가스다. 넓은 지역에 걸쳐 연속적인 형태로 분포되어 있어 시추하기 어려웠으나 1998년 그리스계 미국인 채굴업자 조지 미첼이 이를 채굴할 수 있는 기술을 발견해 낸다. 이후 2005년 미국 텍사스주 바넷(Barnett) 지역에서 셰일 가스 시추에 성공한다. 이러한 셰일 가스 지대의 개발은 미국에서 점차 확대되었다. 셰일 혁명 전만 해도 미국은 사우디로부터 석유를 수입해 왔는데 미국에서 셰일 가스가 대량으로 시추되자 미국은 단번에 에너지 수입국에서 에너지 수출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대량 시추로 막대한 양의 셰일 가스가 미국으로부터 수출되어 국제 시장에 공급되자 셰일 가스의 가격은 하락했고 그 결과 셰일 가스는 가격 측면에서 더욱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사우디의 석유 수출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사우디 경제에 부정적 효과를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는 이에 불만을 갖는다. 이후 사우디는 미국에 셰일 가스를 생산하는 것은 좋으나 생산량을 조절/제한하라는 제안을 했지만 이러한 셰일 가스의 생산과 공급은 자국에게 경제적 이익이 되며 러시아와 사우디를 제치고 국제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잡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미국은 사우디의 요구를 거절했다. 사우디는 이후 미국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기 시작한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 당시 시리아에서의 미군 철수다. 사우디 아라비아 부근에는 시아(파) 벨트(=초승달 벨트)라는 지역이 있는데 사우디 아라비아를 둘러싼, 인접국들(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을 의미하는 말이다. 아래의 그림에서 오른쪽의 이란을 시작으로 바로 옆의 이라크, 그 옆의 시리아, 그 옆의 레바논 순이 바로 사우디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 할 수 있는 시아(파) 벨트(=초승달 벨트)다.


가운데 사우디 아라비아를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비논의 헤즈볼라, 가자 지구의 하마스 그리고 남서쪽의 예멘 후티 반군까지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군은 시리아에서 반정부군 편을 지원해 주며 시리아 내 IS 세력을 억제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트럼프가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바람에 IS가 다시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는 전통적으로 IS, 하마스, 탈레반, 예멘 후티 반군과 같은 극단주의 테러 세력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군이 이렇게 떠남으로써 초승달 벨트에 있는 국가인 시리아 내 IS가 억제되지 않자 안보 불안에 휩싸인 것이다.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담당해 준 이유는 냉전이 한창인 1974년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 사이에서 체결된 페트로 달러 협정 때문이다. 이 협정으로 인해 사우디 아라비아는 석유 결제 수단으로써 달러화를 인정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이란과 같은 사우디의 적대국을 외교적/군사적으로 보호해 줌으로써 사우디 왕가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다. 이 협정으로 미국의 달러는 지금의 기축 통화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고, 사우디 왕가는 미국의 보호 하에 안정적으로 사우디 왕국을 통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으로 인해 중동 정세가 요동치면서 IS가 기승을 부리고, 주변의 초승달 벨트 인접국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하자 사우디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며 페트로 달러 협정 체결 이후 돈독했던 미국과 사우디 사이의 관계는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셋째, 2018년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 사건과 관련한 미국과 사우디의 입장 차다. 카슈끄지 암살 사건은 2018년 10월 카슈끄지가 혼인 관련 서류를 받으러 사우디 총영사관에 갔다가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이다. 카슈끄지는 워싱턴 포스트에서 칼럼니스트로 일했는데 사우디 왕정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많이 기고했다. 국제 사회는 이러한 점에 착안해 분명 이 사건의 배후에는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우디는 이 주장을 적극 부인한다. 이후 사건 현장 음성 파일 등이 나오게 되자 사우디는 통제할 수 없는 요원들이 작전을 실행해 옮긴 것이라고 말을 바꾼다. 또한 사우디 검찰이 현장 책임자를 기소했으나 검찰에 의해 기소된 무함마드 왕세자 측근인 아마드 아시리 전 정보부 부부장은 무죄로 풀려났고, 무함마드 왕세자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사우드 알카후타니 궁정 고문관의 경우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에 빈 살만 왕세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은 더욱 커져간다.


또한 사우디 대신 튀르키예 검찰이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이 사건의 배후를 반드시 밝혀내겠다며 피고인인 사우디 아라비아인 26명을 체포한다. 이를 계기로 사우디와 튀르키예 사이의 외교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다. 이에 튀르키예는 사우디 아라비아인 26명에 대한 궐석 재판을 중단하고 사건을 사우디에게 넘긴다. 이 모든 것들을 봐 온 바이든은 대통령 후보 시절 때부터 사우디를 국제적 왕따로 만들겠다 즉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켜 버리겠다며 발언 수위를 높였고, 이에 역사적으로 친미를 표방해 왔던 사우디 아라비아는 점차 미국과 멀어진다.


이러한 상황은 이번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서방은 경제 제재로 맞대응하자 국제 유가는 치솟고, 덩달아 자국 내의 유가도 상승하게 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OPEC+ 회원국들과의 회담을 통해 석유 증산을 이끌어내길 원했다. 하지만 사우디 왕세자는 최대 생산 능력치인 1300만 배럴까지 늘리겠다며 약속을 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 추가 생산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쳤고, 미국이 OPEC+ 회담 하루 전 사우디와 UAE(아랍 에미리트)에 무기 수출까지 승인했지만 석유 증산량은 고작 10만 배럴 밖에 되지 않았다. 심지어 사우디는 OPEC+ 회담에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보다 러시아산 원유를 더 많이 수입하는 등 러시아와 발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란 핵 문제에 대해 논의해 보겠다던 바이든은 이에 대해 논의하지도 못한 채 귀국길에 올랐다. 추가로 사우디가 증산을 하지 않은 이유는 국제 시장에서의 자국 원유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함도 있었다. 즉 사우디가 미국이 원하는 만큼 증산하지 않은 것은 경제적•외교적 이유 때문이다.


결국 당시 외신들은 중동 회담에서 별로 건진 것이 없다는 등의 내용을 일제히 보도했고 (AFP 통신과 로이터 통신은 전 세계 수요량의 불과 0.1% 밖에 안 되는 증산에 그쳤으며 국제 에너지 위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의 증산량이라고 보도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증산을 위해 껄끄러운 관계인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했지만 의미가 없었으며 정치적으로 거의 모욕적 수준이라고 보도했다./실제로도 빈 살만 왕세자는 바이든 앞에서 남의 나라 인권 운운하기 전에 미국이나 포로를 함부로 다루지 마라라는 말까지 했다.) 추가적으로 최근 중국 주도의 경제 기구인 상하이 협력 기구(=SCO/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에 가입한 것도 미국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사우디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기회 삼아 미국에게서 받은 굴욕을 되갚아 준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사우디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이란: 시아파 종주국, 사우디 아라비아: 수니파 종주국) 이란과 관계가 안 좋고, 여전히 초승달 벨트에서 활개치고 있는 IS,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안보적 위험이 잔재해 있으며 빈 살만의 네옴시티 건설 계획(이는 빈 살만이 본인의 집권기 동안 실현해 옮길 장기적 비전의 프로젝트이며 이러한 스마트 시티 건설을 통해 본인의 장기 집권에 있어 정당성을 부여해 정치적 불만을 잠재울 의도도 내포되어 있다.)에 있어 미국의 자본력과 기술이 필요한 데다 미국도 이란과의 핵 문제 때문에 관계가 안 좋기에 안보적 차원에서 두 국가가 완전히 절연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2024년 12월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던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이 우-러 전쟁으로 러시아의 지원이 줄어들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이란이 정신없던 틈을 타 붕괴되며 사실상 시아 벨트 중 시리아는 없어졌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시리아 반군 세력 중 하나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 즉 HTS 중심의 반군 연합은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이 줄어든 틈을 타 중부 거점 도시인 하마와 제2의 도시인 알레포를 함락시키고 이후에는 수도인 다마스쿠스까지 점령하며 알아사드 정권을 축출시켰다. 이후 HTS의 수장인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를 중심으로 한 새 정부는 친서방을 표방하며 내정 수습, 미국•서방과의 관계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이 HTS는 2012년 알누스라 전선이라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로 처음 활동을 시작했다. 성립 초기에는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저항보다 지하디스트 즉 이슬람 성전주의 이념 설파에 중점을 뒀다. 그리고 성립 초반 알카에다에게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알누스라 전선은 알카에다와 결별하고 다른 세력과 합병해 세를 불린 뒤 HTS로 개칭했다. 이 단체의 수장인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로 한때 미국에 의해 국지 테러리스트로 지명 수배 당한 적도 있었다.


이렇듯 시리아가 무너지자 중동 내 영향력을 잃은 러시아는 당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가뜩이나 힘이 빠져있는데 자국 국경 부근의 시리아내 친러 정권까지 무너지니 말이다. 이후 러시아는 무너진 중동 나 영향력 회복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테러 단체임에도 이례적으로 공식 인정한다. 게다가 이란이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대립하자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나서기도 했다. 이란 역시 자국 프록시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연이은 공습과 암살, 1년 10개월 가량 이어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예멘 후티 반군, 레바논의 헤즈볼라, 하마스가 막대한 피해를 입자 최근 무기•자금 지원으로 프록시들의 재무장에 나섰다. 이 역시 시리아 내 알아사드 정권 붕괴로 인한 자국 영향력의 축소를 만회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될 수 있다.)


1번이 시리아, 4번이 이란, 5번이 아프가니스탄이다. 이 지도를 보면 위의 내용이 이해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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